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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7 "피자가 될래요"으로부터의 pizza 예찬 2


그러니까 나는 지금 무척 심심해서 글을 쓰기로 생각했다.

몇가지 쓰고 싶은 것들이 머릿속에 뒤엉켜있는데

 



지난주에는 추수감사절이었다.

우리 친척중에는 교회에서 일을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추수감사절에는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새벽예배 때문에 출근시간이 훨씬 이르다. 그 교회는 우리 집 근처에 있다. 그리하여 그 친척분은 일주일동안 우리 집에 머무르셨다. 내동생과 나는 친척분의 방문을 무척이나 즐거워하는데 그 까닭은 이 친척분이 우리 남매가 치킨을 무척이나 즐겨먹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지난주에는 치킨-피자-치킨-치킨의 경의로운 야식메뉴가 구성되었다. 

 
어제, 그러니까 월요일. 추수감사절이 지난 어제, 내동생은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벌써 가셨어?"

이말은 꼭 내게 이렇게 들렸다. Chicken is gone ...

(물론 우리 남매는 치킨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친척분을 사랑한다.)

 

어쨌거나, 놀라운 것은 바로 어제, 치킨이 없는 자리를 섭섭해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피자를 사오셨다는 것이다. 하여 우리는 "치킨-피자-치킨-치킨-피자"를 이을 수 있게 되었다. 어제 먹은 피자는 나의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하기 위해 아버지가 특별히 귀가 길에 피자 가게에 들르신 것이다. (생뚱맞게도 내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게 되었다. 껄껄껄) 어쨌거나 내 친구 말에 의하면, 크리스마스때나 먹을 만한 비싼 피자를 한 주의 한판씩 먹어치운 나로써는 황홀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난 너를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야.

 

문득 먹는 것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졌다. 개인적으로 피자랑 치킨은 그 어감이 상당이 모냥새빠진다고 생각한다. 치킨은 그렇다치고, pizza라는 외국어를 형상학적으로 보았을때, 문자 자체에서 피자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p자를 닮은 판에서 둥그렇게 모양을 내고 그위에 토핑을 톡톡 올려놓고(i) 화로에 구워 바로 먹었을 때 z처럼 쭈욱 늘어나는 치즈들. 그리고 우리는 말한다.

 

"a~" 아, 맛있다.

 

이런 영어 표기에 비해 '피자'는 너무 가볍고 패스트푸드의 냄새가 너무 진하게 난다. 피자의 말랑말랑하고 쫀득쫀득함에 비해 이 단어는 펑퍼짐하게 퍼진 느낌이 심하게 든다. 이렇게 쓰고 나니 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난 너를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야.

 

사실 내가 딱히 가리는 음식은 세상에 딱 세가지가 있는데- 노란 슬라이스 치즈와 가지요리와 노오란 호박- 차라리 대부분의 음식을 잘 먹는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실제로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하냐는 질문은 무척이나 당혹스럽다. 시시때때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슨 음식이든 '맛있는' 음식을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제일 꺼리는 상황은, 아무 정보도 없이 어느 음식점에 찾아가야 하는데 마땅히 가고싶은 곳도 없을 때다.

 

 맛집에 대한 집착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다. 아마 중학생? 때부터 나는 나만의 맛집 정보 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친구들은 어느 동네에 떨어지면, 어디가 맛있냐고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노트를 휘리릭 넘기며 지역 정보를 전해준다. 이런 일이 꽤 오랫동안 진행되었는데, 언제나 정보력이 많은 나는 늘 그런 정보통이었던 것 같다. 맛집, 재밌는 곳, 가볼 만한 카페, 뭐 이런 것에 언제가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늘 모든 선택은 나로부터 정해졌는데, 대학교 2학년 때쯔음 나는 이런 지역정보지 역할에 흥미를 잃었다. 그래, 너무 오래 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깜짝 놀랄만한 근사한 것들을 소개해주느라 나는 늘 그것을 알고 있어야 했고, 언제나 한시간짜리 예고편을 보고 두시간짜리 영화를 보러 들어간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너를 배려하기 때문에 네가 좋아하는 곳, 네가 먹고싶어 하는 곳으로 가자'는 말에서 생뚱맞게 무책임감을 느끼는 까닭이다. 그래서 요즘은? 나의 오래된 베태랑 친구들을 만날 때는 한치의 의심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나가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서로 기대없이 만나는 경우 습관처럼 나는 주변 검색을 하고 나가야 마음이 편하다. 이곳이 남도가 아니기 때문에, 서울의 아무 식당 문을 열었을때 기분좋게 먹고 나올 수 있는 곳이 10곳 중 세곳이 안될 것이라는게 개인적인 지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피자만큼은 어디서 먹어도 맛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피자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모양이다. 물론 비쌀수록 맛있는게 피자이지만 나는 배고플 때 도서관앞에서 친구와 2500원을 모아서 사먹는 작은 피자도 맛있고, 체인점에서 먹는 호화로운 피자도 맛있고,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먹는 피자도 전부 맛있다. 물론 차등은 있지만, 언제나 좋은 기억 뿐이다.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 근처에는 백화점이 하나 있고 그 안에 리미니 레스토랑이 있다. 거기서 종이조각같이 얇아서, 한 손에 둘둘 말아 두 입에 넣고 싶은 피자를 파는데 그것이 며칠 전부터 계속 생각나는 거다. 이상하게 기회가 잘 안닿았다. 그런데 문득, 오늘 생각해보니 그것이 또 먹고 싶은 거다. 어째서 피자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을까? 이건 연구대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면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한다지만, 나는 한번도 외국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을 해 본 적이 없다. 음식에 대한 적응력 만큼은 원어민수준이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아프리카식 저녁을 먹었을 때, 나는 정녕 이곳이 내 고향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도 밥은 거의 안먹는 (그러니까 반찬만 먹는) 나는 밥 없는 생활이 충분히 가능했다. 고작해야 가끔 떡볶이 생각이 났을 뿐, 나는 밥 보다 좋아하는 빵과 고기의 나라에서 한번도 음식 때문에 슬펐던 적이 없었다. 아마 먹는 것 때문이라면, 평생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어땠던가. 함께 갔던 사람들은 죄다 고추장에 멸치를 꺼내 밥을 먹을 때, 나는 중국인보다 더 맛있게 향신료 가득친 마파두부를 떠먹고, 베이징덕을 먹었다. 그 어떤 냄새나 맛도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왔을 때도 타조고기와 낙타술이 가장 그리웠다고 하면, 음, 너무 야만적인가. 하지만 미각 때문에 정말 고생했다. 가끔 가다 정말 아프리카 음식 냄새 혹은 맛이 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립다는 생각보다 눈물이 먼저 난다. 마치 어떤 풍경보다도 그곳에서의 노랫가락, 선율 한 자락이 더 그리움을 자아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나는 한가지 음식에 중독되면 그것이 질릴 때까지 먹곤 한다. 예전에 치기어리던 시절에는 그랬다. 크림 스파게티가 좋아서, 서울의 모든 스파게티를 접수해서 랭킹을 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만의 베스트를 갖게 된 후에 중단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에 별로 흥미는 없다. 다만 내가 가끔 그런 별난 짓을 할 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그래도 평생 그것만 먹고 살라고 하면 지겨울걸!"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 피자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갑자기 피자 타령인가 하면, 최근에 먹은 피자 생각과 먹고 싶은 피자 생각에 더해 오늘 굉장히 웃긴 장면을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붕어빵'이라는 TV프로그램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둘이 나와 퀴즈를 푸는데 정은표씨 아들 정지웅군이 출연했다. 사회자가 이 아들에게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녀석의 대답이 과관이었다.

 

"전 만화가가 되고 싶은데,

아빠가 우리모두 살 수 있다고 피자가 되래요."

 

 

 

우와, 난 진짜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피자가 되라니!

마저 감격할 틈도 없이, 알고보니 피디라는 발음이 빠진 잇사이로 새어 피자가 된 것이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는데, 나는 곰곰히 피자가 된다는 게 뭘까 하고 생각했다. 만약 나같은 사람에게 피자가 된다는 꿈은 무척이나 근사한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고, 행복하게해주고, 아무말 없이도 웃게 만들어주는 것이랄까.

 
생각해보니 나는 한때 "~피자가 낫다"는 수사를 종종 쓰기도 했다. 이를테면, 너보다 피자가 낫다. 뭐 보다 피자가 낫겠다. 라는 식의 관용구랄까. 그러고보니 피자와 나의 인연이 깊구나. 

 하지만 피자는 너무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라서 뭐랄까 특별한 기분은 덜한 건 분명하다. 무슨 날이기때문에 피자를 일부러 먹는 일은 거의 없다. 나에게 피자는 아버지의 선물같은 것이다. 아버지가 사오시면 먹는날(사랑합니다) 나의 바람은 그저 가끔 먹는 피자를 주식처럼 먹고 싶다는 것일 뿐.

  

Good taste food maks me happy.

 

피자가 되래요, 에서 시작한 피자 타령이 길어졌다. 여름에도 좋아했지만, 겨울이 되니 따끈따끈한 국물과 탕이 더욱 반갑고, 먹는 풍경이 어쩐지 더욱 따뜻하고 훈훈하게 느껴져 괜히 기분이 좋다. 올 겨울에도 맛있는 풍경 속에 많이 담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피자같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도 슬며시 생각해본다. 

 

 

Posted by 프로듀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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