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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7 오로지 내 개인적인 취향에만 의존하여 <업>보기 2
감독 피트 닥터, 밥 피터슨 (2009 / 미국)
출연 이순재, 에드워드 애스너, 크리스토퍼 플러머, 조던 나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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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상징적으로 가지고 있는 - 그러니까 누가 물으면 이 영화 제목을 대야지- 영화 제목을 읊는다. 사실 그것은 내가 제일 좋아한다기보다 좋아하는 영화 중 일부다. 제각기의 남다른 가치와 매력을 뽐내는 좋은 영화가 많아 그 중에서 제일은 고르기 힘들다. 차라리 어느 감독의 제일 좋은 영화, 정도면 또 모르겠다.

 

또 어려운 질문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는 질문이다.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는 말할 수 있어도 좋아하는 감독을 말하는데는 꽤 오랜시간이 걸리는데, 일단 좋아하는 감독이 많긴 한데 그들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혹은 모든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 두번째로는 내가 좋아하는 몇몇 감독들은 영화와 관계없는 그들의 영화 밖 모습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 두번째 이유. 결론적으로 이것 역시 무척이나 우러러보고 좋아하기 때문에 꼽기 어렵다. 멋진 사람(영화)들이 너무 많아서, 알면 알수록 더 멋진 사람(영화)들을 알게 된다. 그게 영화의 세계의 매력이다. 그래도 말이 나왔으니 답을 좀 내고 가자면,

 

최근에 개봉한 영화중에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당연 쿠엔틴 티란티노

최근에 가장 관심있는 감독은? 제인 캠피온, 스티븐 달드리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은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

 

흠. 이런 식으로 나는 한시간 정도 계속 써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친구와 "네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무엇이니"라는 질문을 하고 답을 준비하면서,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없다고 말했고, 생각해왔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점은 최근에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느낀 바 있어 몇자 적는다.

 

그러니까 누누히 나는 멜로를 만들고 싶어하는데도 불구, 자꾸 피가 낭자하고 죽음의 기운이 엄습한 스릴러 장르의 결과물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첫번째 영화야 기획자체가 그랬다-기보다도 그것 역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목표였는데, 그 재미가 스럴러적인 재미로 드러났다. 이제껏 내가 썼던 몇가지 시나리오에는 대부분 쫓는자와 쫓기는자가 등장하고 추격씬 혹은 한밤중에 범죄사건이 대부분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호오)

  

그러니까 안하는 것은 의미이지만, 다르게 하고 싶은데 자꾸만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이거 숨겨진 취향의 문제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내가 자꾸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것을 보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자꾸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가? 나는 영화가 영화적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상의 풍경을 담아 현실과 소통하는 영화도 좋지만, 나는 '이것이 영화다'는 걸 인식시켜주면서 시각적인 상상력을 극하게 밀어붙이는 데에 재미를 느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는 그런 스릴러나 어두운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는 것. 정말인가? 한번 살펴보자고 생각해봤는데....... 내가 최고로 치는 영화들, 이를테면 <메멘토> <파이트클럽> <괴물> <드레그미투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흠=_-

 

 

이런 측면에서 최근에 본 세 편의 영화를 논해보자.

 

왜 취향의 문제를 들썩거렸는가하면, 사람들의 많은 추천을 받고 본 영화가 기대만큼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이것이 취향의 문제인지 검토해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역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줄거리 생략, 취향따라 꽂힌 부분, 별로인 부분 톡톡 집어가며 되는대로 평하겠음을 미리 알려둔다.

 

 

첫 번째로, <업>을 보았다.

이건 몇몇의 지인이 입을 모아 "어떻게 이런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있느냐."라고 말했는데, 마치 그 말이 "네가 세상 사는 재미를 제대로 알고는 있느냐"처럼 들렸기 때문에, 일종의 의무감으로 챙겨본 영화다. 예상치 못한 장면은 프레드릭슨 할아버지의 유년부터 성장기까지 동화책 넘어가듯 그려진 부분이었다. 꽤 인상적이었다. 이런 걸 흔히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옛시절'이라고 표현하는데, 동시에 우리는 이렇게 과거를 회상할 때 "영화처럼 흘러갔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고로 나는 이러한 풍경이 꽤나 영화적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적이지만, 어차피 영화란 인간의 삶을 그리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영화는 한 시점, 혹은 한 사건을 그리는데 골몰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쭈욱 훑어주는 것- 그 사람이 영웅도 아닌 평범한 사람인데도 말이다-이 나에겐 때때로 감동을 준다. (워싱턴 포스트는 “신랄함과 우아함에 있어 채플린의 그것만큼 가치있다”라고 이 4분짜리 오프닝씬을 평하기도 했다.)

최근에 아시아나 단편영화제에서 <구멍>이라는 이스라엘 단편영화를 보았다. 5분짜리 짧은 영상인데, 늙으신 할머니가 깜깜한 눈을 껌벅거리시면서 바늘에 실을 꿰려고 한다. 그러다 겨우 들어가 바늘이 실을 타고 쭈욱 떨어지는 그 찰나, 할머니의 인생이 앨범처럼 지나간다. 그래, 나는 언제나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이렇게 되었다'는 변신 혹은 변화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건 참 짠한 풍경이다. 언제나 내 예전 사진을 돌아봤을 때 짠해지는 것마냥 말이다. 그래서 그것이 만화임에도 불구, 어린 프레드릭씨가 할아버지가 되는 짧은 찰나가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공간을 이동하는 연출이 눈에 띄었다. 다음에 꼭 써보고 싶은 효과인데, 인물에 포커스를 두고 배경만 바꾸어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이런 만화적인 연출이 무척이나 효율적이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명장면은 집이 하늘 가득 매워버릴 풍선을 매달고 둥둥 떠오르는 장면일 것이다. 뭐랄까, 어디에도 부딪치지 않고 떠오르는 집을 보면서, 저거 어느정도 높이 올라가면 호흡하기 어려운거 아닐까,라며 프레드릭슨의 호흡기 걱정을 한 나에게서 동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걸까? 하지만 나는 정말 진지하게 걱정이 되었다. 저 집이 떠오르다가 어딘가 부딪칠 텐데, 떠오를때 배수관 및 땅에 연결된 것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집이 떨어지면 그 밑에 혹시 사람이 깔리는 건 아닐까? 뭐 이런...... 너무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화라서 그런지 자꾸 산만한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것은 너무 명확한 기승전결 구조다. 그러니까 이런 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나란 사람이란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요즘 내 영화 취향을 여기에서 기대자. 나는 결말같지 않은, 갑자기 뚝 끊겨버린 듯한 결말. 영화가 끝나도 계속 주인공을 걱정하게 만드는 결말, 삶은 죽음과 같지 않기에, 영화역시 삶처럼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도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 결말에 끌린다. 러셀이 도요새를 구하러가야겠다고 말하는 순간, 똘똘말린 레드카펫이 눈앞에 쫙 펼쳐지듯이 선명해지는 결말 구조가 내 흥을 깨뜨렸다. 그 순간부터 조금 지루해졌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의 끝부분, 할아버지와 노인이 코너에 앉아서 자동차 색깔 맞추기를 하고 있는 훈훈한 장면이다.

 

러셀의 얼굴이 고개를 돌릴 수 없을 만큼 귀엽고 앙증맞았고, 할아버지의 시종일관 "NO"가 랩처럼 흥미로웠던 점, 즉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는 픽사와 디즈니만큼 매력적인 능력자들도 없다. 하지만 현실 바깥 - 이를테면 숲속이나 장난감 세계-에서의 일들이 환상적이고 상상적으로 처리되는 부분은 영화를 보며 의심없이 믿게 되지만, 현실적인 부분 - 그러니까 집이 풍선에 매달려 하늘에 떠올라 남미까지 간다-에서는 조금 설득력이 부족한게 아닌가 싶다.

 

나는 현실성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설득력있는 논리만을 기대한다. 그것이 영화의 재미다. 잘 구축된 상상력의 재미다. 외계인에게 침공당한 지구가 배경이다 하더라도 그 외계인이 왜 여기에 왔으며 어떻게 왔고, 뭘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는지가 논리적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런데에 비해 <업>은 좀 두루뭉술한 설정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집이 떠오를 때 다른 건물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풍선에 장치를 해두거나 ( GPS) 높이 솟아 오를때 호흡기를 쓴다거나. 이런 디테일이 있었다면 더욱 박장대소를 했을텐데! 하지만 캐릭터 부분에서만큼은 에니매이션이라는 장르를 뛰어넘는다는 것, 그러니까 더이상 캐릭터가 동화속에 나올법하지 않은, 길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칠 것만같은 캐릭터라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는 점을 다시한번 언급하며 맺는다.

 

 

 나머지 두편의 영화는 다음시간에.. 총총

   

 



Posted by 프로듀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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