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그 사람이 말하는 표정을 보고도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구나, 짐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비록 쿠엔틴티란티노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이제껏 그의 영화와 그가 출연한 영화와 관련된 수많은 영상과 사진을 통해 추측하건데, 티란티노는 참 멋진 연출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아주 마음에 든다.
 
그의 영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지 보는 사람까지 느끼게 해준다. 그는 역사를 상상하는 와중에도 영화를 잊지 않는다. 나치가 영화관 안에서 테러당한다는 설정은, 정말 티란티노다운, 그만의 상상력이다. 
 
그는 타고난 말재주꾼이자 이야기꾼이다. 단순히 재미있고 멋진 말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어, 말 자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줄 안다. 이번 영화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불어, 이태리어, 영어, 독일어라는 언어 자체를 소재로 사용하여 다양한 풍경과 코메디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인데, 심지어 영화 속 군인들은 바bar에 모여 단어게임을 즐기고 있을 정도다. 언어의 향연이 벌어지는 이 영화는 그만큼 자막을 따라가기 쉽지가 않지만, (그리고 실제로 저 다양한 언어를 직접 들을 수 있었으면 더 익사이팅했을것이다!!!) 그 풍경만으로도 단단한 재미를 챙길 수 있다.
 

 
 
티란티노의 영화는 폭력이 난무하고 때로는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장면과 마주치곤 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익살적인 상황과 맞닿아있다. 그리하여 그의 영화는 (이런 의미로) 만년 B(삐)끕무비다. 캐릭터의 코믹함, 혹은 상황 자체의 아이러니함 (이번 작품에서는 영사실에서 커플의 총격씬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충격적일 정도로 재미있었다)은 그 어떤 잔혹함도 비틀어낸다.
 
티란티노는 거침이 없다. 이야기의 구성에 있어서도, 연출 혹은 대사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기승전결따위 없고, 특별히 주인공이 많이 나오고 중요한 일을 해야할 필요도 없다. 도대체 저들은 왜 저렇게 쓸데없는 일에 골몰하나도 싶지만, 이야기는 말에 출렁거리면서도 결말을 향해 흘러간다. 끝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마무리되기는 커녕, 더 당혹스럽고 난처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익살스러움을 그치지 않는다.
 
게다가 종종 DVD 서플먼트에 비치는, 연출하는 티란티노를 보라. 그가 자기 영화를 만들면서 얼마나 낄낄대며 좋아하는지 보고있는 사람마져 피식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다. 만드는 사람이 저런 표정으로 만들고 있는데 영화가 재미가 없을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이런 쿠엔틴 티란티노를,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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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전투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 (1966 / 이탈리아, 알제리)
출연 브레힘 하쟈드, 쟝 마틴, 야세프 사디, 푸시아 엘 카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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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 특별 상영으로 보게 된 영화. 영화관에서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올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로 단연 이 영화를 꼽고 싶다.
 
 
혁명을 성공하는 건 어렵다
그보다는 혁명을 유지시키는게 어렵고
그보다는 혁명 그 이후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게 더 어렵다는 것을 알려준 영화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 그 세계속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살인과 복수, 끝없이 죽고 죽어가는 프랑스와 알제리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황폐화 된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영화는 영화적인 매력을 잃지 않았다.
 
사건 곳곳에 익명의 얼굴들이 카메라의 잡힌다. 대중들의 얼굴을 놓치지 않는 카메라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영화적 정서를 만들어낸다. 때로 그들의 얼굴이, 알제리 시민들의 눈빛이 대사보다 더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곳곳에 명대사와 인상적인 장면들이 넘쳐났다. 긴장과 유머, 전쟁의 비통함과 혁명과 시민들. 이 모든 것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2시간 동안의 '그때 그곳'의 삶을 구축해낸다. 혁명에 관한 영화 중 가장 사실적이고 힘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단순히 혁명을 일으키자는 선동영화가 아닌, 혁명이라는 것에 관한 고민이 담겨있는 영화였다. 나 역시 이 영화를 통해 혁명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어떻게 유지되고, 어떻게 사회를 바꿔나가야 하는가 고민해볼 수 있었다. (이런 교과서같은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진정한 명작)
 
바구니 테러를 비난하는 외신기자들에게 "당신네 폭격기를 주면, 우리 바구니를 드리죠"라며 당당하게 눙치는 모습, 혁명을 돕는 꼬마가 "겁먹지 마세요! 우리가 이길거에요"라고 중앙 마이크를 뽑아 외치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알제리의 혁명은 혁명단원들로부터 이뤄지지 않았다. 알제리 혁명단원들이 모조리 처형되고 더이상 희망도 변화도 없을 것만 같은 그때, 알제리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결국 해방군은 그렇게 다 죽었지만, 190년동안 그들이 못하던 일을, 민중들이 2년만에 해냈다.
 
 
 
"아무도 왜 어떻게 시작됐는지 몰랐다.
사람들은 춤추듯 뛰어나왔다.
곳곳에 섬뜩한 함성이 울려퍼졌다" 
 
독립을 달라... 자존심을 돌려달라...

 
 
 
안개가 걷히며 보이지 않던 수만명의 사람들이 달려나올 때, 정말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동이 터져나왔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역사는 누군가의 예상대로 결코 흘러가지 않더라. 그것이 선한계획이든 악한계획이든 역사는 제아무리 악명높은 독재, 압제의 시대 속에서도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이어지는 탱크의 진압장면...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도 낯선 장면이 아닐 것이다. 그날의 역사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묘한 충격과 감동.
 
함께 영화를 보던 관객들의 연령층은 제각각이었다.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몇몇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과 숨죽이며 본 2시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어쩐지 숙연해진 얼굴로 극장을 나오던 그 풍경. 아마 올해 잊지 못할 풍경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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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원작은 세 권짜리 소설이다. 일찌감치 책을 읽고 영화개봉을 기다렸던 나는, 이 이야기를 제대로 담기 위해서라면, 11시간짜리 드라마는 아니더라도 4시간짜리 러닝타임정도는 확보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상상했었다. 그만큼 등장인물도 많고 사건도 많을뿐더러 이 모든 이야기와 인물들이 한 방향을 향해 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원작보다 나은 개작은 없다고. 이제까지 영화경험을 살려봤을 때 대부분의 작품은 그러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원작’이라는 것 자체가 소설로 쓸 수밖에 없어서 소설로 씌여진 이야기이고, 영화로 찍을 수 밖에 없어서 영화로 찍힌 이야기가 아닌가. 다른 매체로의 이동은 처음부터 그대로 담아낼 수 없는 한계를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원작 <백야행>에 홀린 나는 영화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내심 기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라고는하지만, 결국 매일매일 기대하며 기다린 셈이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렇게 가슴속에서 긴장감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적은 처음이었다. 이 문장을 정확히 해석하자면, 첫 장면이 보이자마자 내 머리 속에 늘 흐르던 <백야행> 이야기가 맞물려가면서 나는 처음을 보면서도 처음-중간-끝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장면장면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강렬한 서술이 한문장 한문장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물론 영화는 첫 장면부터 강렬한 이미지로 시작한다. 살인 장면과 러브신장면을 점차 높아져가는 클래식 선율에 맞추어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소설에서는 요한과 미호의 이야기가 거의 평행을 이루며 서술된다. 독자는 스스로 교접점을 찾아가며 군데군데 안타까움 혹은 놀라움의 탄성을 자아내는 재미가 있다. 이러한 구성은 밝은 하늘 아래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두 사람의 사랑의 안타까움을 고조시킨다.


이에 반해서 영화는 요한과 미호의 개별적인 이야기는 줄이고, 서로 떨어져있는 두 사람이 만나고 연결되는 접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는 초반부터 두 사람이 어떤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관객은 알 게 된다. 자꾸만 연결되는 생활의 동선과 삶의 영역을 통해 화려한 태양 같은 미호의 삶과 어두운 그늘 속의 요한의 삶이 더욱 대비된다. 영화는 현명하게도 소설 속 다른 매력적인 이야기 거리를 과감하게 삭제하고 두 사람의 사랑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여 영화는 소설 속 수많은 사건이 미세한 흔적만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을 향해 우직하게 나아간다.

 



박연선 작가의 대사는 역시나 만족스러웠다. 소설 속에서 형사가 왜 그토록 14년 전 사건에 집착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데, 영화 속에서는 아들의 죽음을 결부시켜 당위성을 장치해 두었다. 또 소설 속 중요한 명대사들을 곳곳에 배치해두어 영화 곳곳에서 소설 속에서 느꼈던 문장의 맛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TV프로그램을 ‘동물의 왕국’으로 바꾸어 원숭이와 새끼 일화로 비유를 하는 등 세세한 디테일적인 부분도 자연스럽게 처리되었다. 또 마지막 옥상에서의 대치 장면은 소설 속에 없던 장면인데도 불구 형사와 요한의 울부짖음이 무척이나 극적으로 다가왔다.

“미안하다. 더 일찍 잡아주지 못해서......”

"그거 아세요? 태양이 높이 뜨면, 그림자는 사라지는 거에요"


  

 

밝음과 어둠- 빛의 대비인 만큼 스크린 속에서 만나는 요한과 미호의 모습은 소설 속 그것보다 훨씬 강렬하다. 다만, 각 캐릭터가 품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는 조금 미흡했다. 물론 소설 페이지와 러닝타임의 차이겠지만, 소설 속에서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설득력있게 획득되는 요한과 미호의 독특한 분위기와 신비로움이 영화 속에서는 평면적으로 드러났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끝까지 지켜줄게!”라며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요한과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라며 냉혹하게 죽음을 사주(使嗾)하는 미호라는 인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이 조금 들기도 했다.

 

오히려 영화에서 요한은 조금 더 순정적인 남자로 느껴졌다. 소설 속에서도 그는 헌신적이었지만 천재적인 지능이 돋보이는 냉혹한 남자로 느껴졌는데 극 중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고수의 모습은 조금 더 여린, (어른보다는) 청년의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미호가 소설 속보다 더 단단하게 그려졌다. 늘 비밀스러운 미소를 띠고는 있지만, 군데군데에서 인상을 쓰고, 이를 악무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인상적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직접 만나거나 통화를 하거나 눈빛을 교환하는 것, 혹은 그저 스쳐지나갈 지라도 곁에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관객으로서 큰 쾌감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설 <백야행>에서 단 한 번도 두 사람의 만남이나 접촉(사랑)을 볼 수 없어서 얼마나 아쉬웠던가. 비록 행복한 장면은 드물었지만, 늘 주변을 맴돌고 지켜주고 있는 요한의 존재를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애틋함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읽을 땐, 마지막 장면에서의 미호가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요한의 마지막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그 미소를 떠올리니, 다시 한번 요한이 보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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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피트 닥터, 밥 피터슨 (2009 / 미국)
출연 이순재, 에드워드 애스너, 크리스토퍼 플러머, 조던 나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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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상징적으로 가지고 있는 - 그러니까 누가 물으면 이 영화 제목을 대야지- 영화 제목을 읊는다. 사실 그것은 내가 제일 좋아한다기보다 좋아하는 영화 중 일부다. 제각기의 남다른 가치와 매력을 뽐내는 좋은 영화가 많아 그 중에서 제일은 고르기 힘들다. 차라리 어느 감독의 제일 좋은 영화, 정도면 또 모르겠다.

 

또 어려운 질문은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는 질문이다.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는 말할 수 있어도 좋아하는 감독을 말하는데는 꽤 오랜시간이 걸리는데, 일단 좋아하는 감독이 많긴 한데 그들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혹은 모든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 두번째로는 내가 좋아하는 몇몇 감독들은 영화와 관계없는 그들의 영화 밖 모습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 두번째 이유. 결론적으로 이것 역시 무척이나 우러러보고 좋아하기 때문에 꼽기 어렵다. 멋진 사람(영화)들이 너무 많아서, 알면 알수록 더 멋진 사람(영화)들을 알게 된다. 그게 영화의 세계의 매력이다. 그래도 말이 나왔으니 답을 좀 내고 가자면,

 

최근에 개봉한 영화중에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당연 쿠엔틴 티란티노

최근에 가장 관심있는 감독은? 제인 캠피온, 스티븐 달드리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은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

 

흠. 이런 식으로 나는 한시간 정도 계속 써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친구와 "네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무엇이니"라는 질문을 하고 답을 준비하면서,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는 없다고 말했고, 생각해왔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점은 최근에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느낀 바 있어 몇자 적는다.

 

그러니까 누누히 나는 멜로를 만들고 싶어하는데도 불구, 자꾸 피가 낭자하고 죽음의 기운이 엄습한 스릴러 장르의 결과물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첫번째 영화야 기획자체가 그랬다-기보다도 그것 역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목표였는데, 그 재미가 스럴러적인 재미로 드러났다. 이제껏 내가 썼던 몇가지 시나리오에는 대부분 쫓는자와 쫓기는자가 등장하고 추격씬 혹은 한밤중에 범죄사건이 대부분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호오)

  

그러니까 안하는 것은 의미이지만, 다르게 하고 싶은데 자꾸만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이거 숨겨진 취향의 문제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내가 자꾸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것을 보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자꾸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가? 나는 영화가 영화적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상의 풍경을 담아 현실과 소통하는 영화도 좋지만, 나는 '이것이 영화다'는 걸 인식시켜주면서 시각적인 상상력을 극하게 밀어붙이는 데에 재미를 느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는 그런 스릴러나 어두운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는 것. 정말인가? 한번 살펴보자고 생각해봤는데....... 내가 최고로 치는 영화들, 이를테면 <메멘토> <파이트클럽> <괴물> <드레그미투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흠=_-

 

 

이런 측면에서 최근에 본 세 편의 영화를 논해보자.

 

왜 취향의 문제를 들썩거렸는가하면, 사람들의 많은 추천을 받고 본 영화가 기대만큼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이것이 취향의 문제인지 검토해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역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줄거리 생략, 취향따라 꽂힌 부분, 별로인 부분 톡톡 집어가며 되는대로 평하겠음을 미리 알려둔다.

 

 

첫 번째로, <업>을 보았다.

이건 몇몇의 지인이 입을 모아 "어떻게 이런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있느냐."라고 말했는데, 마치 그 말이 "네가 세상 사는 재미를 제대로 알고는 있느냐"처럼 들렸기 때문에, 일종의 의무감으로 챙겨본 영화다. 예상치 못한 장면은 프레드릭슨 할아버지의 유년부터 성장기까지 동화책 넘어가듯 그려진 부분이었다. 꽤 인상적이었다. 이런 걸 흔히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옛시절'이라고 표현하는데, 동시에 우리는 이렇게 과거를 회상할 때 "영화처럼 흘러갔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고로 나는 이러한 풍경이 꽤나 영화적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적이지만, 어차피 영화란 인간의 삶을 그리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영화는 한 시점, 혹은 한 사건을 그리는데 골몰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쭈욱 훑어주는 것- 그 사람이 영웅도 아닌 평범한 사람인데도 말이다-이 나에겐 때때로 감동을 준다. (워싱턴 포스트는 “신랄함과 우아함에 있어 채플린의 그것만큼 가치있다”라고 이 4분짜리 오프닝씬을 평하기도 했다.)

최근에 아시아나 단편영화제에서 <구멍>이라는 이스라엘 단편영화를 보았다. 5분짜리 짧은 영상인데, 늙으신 할머니가 깜깜한 눈을 껌벅거리시면서 바늘에 실을 꿰려고 한다. 그러다 겨우 들어가 바늘이 실을 타고 쭈욱 떨어지는 그 찰나, 할머니의 인생이 앨범처럼 지나간다. 그래, 나는 언제나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이렇게 되었다'는 변신 혹은 변화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건 참 짠한 풍경이다. 언제나 내 예전 사진을 돌아봤을 때 짠해지는 것마냥 말이다. 그래서 그것이 만화임에도 불구, 어린 프레드릭씨가 할아버지가 되는 짧은 찰나가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공간을 이동하는 연출이 눈에 띄었다. 다음에 꼭 써보고 싶은 효과인데, 인물에 포커스를 두고 배경만 바꾸어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이런 만화적인 연출이 무척이나 효율적이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명장면은 집이 하늘 가득 매워버릴 풍선을 매달고 둥둥 떠오르는 장면일 것이다. 뭐랄까, 어디에도 부딪치지 않고 떠오르는 집을 보면서, 저거 어느정도 높이 올라가면 호흡하기 어려운거 아닐까,라며 프레드릭슨의 호흡기 걱정을 한 나에게서 동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걸까? 하지만 나는 정말 진지하게 걱정이 되었다. 저 집이 떠오르다가 어딘가 부딪칠 텐데, 떠오를때 배수관 및 땅에 연결된 것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집이 떨어지면 그 밑에 혹시 사람이 깔리는 건 아닐까? 뭐 이런...... 너무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화라서 그런지 자꾸 산만한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것은 너무 명확한 기승전결 구조다. 그러니까 이런 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나란 사람이란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요즘 내 영화 취향을 여기에서 기대자. 나는 결말같지 않은, 갑자기 뚝 끊겨버린 듯한 결말. 영화가 끝나도 계속 주인공을 걱정하게 만드는 결말, 삶은 죽음과 같지 않기에, 영화역시 삶처럼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도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 결말에 끌린다. 러셀이 도요새를 구하러가야겠다고 말하는 순간, 똘똘말린 레드카펫이 눈앞에 쫙 펼쳐지듯이 선명해지는 결말 구조가 내 흥을 깨뜨렸다. 그 순간부터 조금 지루해졌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의 끝부분, 할아버지와 노인이 코너에 앉아서 자동차 색깔 맞추기를 하고 있는 훈훈한 장면이다.

 

러셀의 얼굴이 고개를 돌릴 수 없을 만큼 귀엽고 앙증맞았고, 할아버지의 시종일관 "NO"가 랩처럼 흥미로웠던 점, 즉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는 픽사와 디즈니만큼 매력적인 능력자들도 없다. 하지만 현실 바깥 - 이를테면 숲속이나 장난감 세계-에서의 일들이 환상적이고 상상적으로 처리되는 부분은 영화를 보며 의심없이 믿게 되지만, 현실적인 부분 - 그러니까 집이 풍선에 매달려 하늘에 떠올라 남미까지 간다-에서는 조금 설득력이 부족한게 아닌가 싶다.

 

나는 현실성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설득력있는 논리만을 기대한다. 그것이 영화의 재미다. 잘 구축된 상상력의 재미다. 외계인에게 침공당한 지구가 배경이다 하더라도 그 외계인이 왜 여기에 왔으며 어떻게 왔고, 뭘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는지가 논리적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런데에 비해 <업>은 좀 두루뭉술한 설정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집이 떠오를 때 다른 건물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풍선에 장치를 해두거나 ( GPS) 높이 솟아 오를때 호흡기를 쓴다거나. 이런 디테일이 있었다면 더욱 박장대소를 했을텐데! 하지만 캐릭터 부분에서만큼은 에니매이션이라는 장르를 뛰어넘는다는 것, 그러니까 더이상 캐릭터가 동화속에 나올법하지 않은, 길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칠 것만같은 캐릭터라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는 점을 다시한번 언급하며 맺는다.

 

 

 나머지 두편의 영화는 다음시간에..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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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여행을 ‘당하는’ 남자, 헨리.

시간여행에 관한 많은 이야기와 영화가 많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의 속성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 역시 그러한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다. 시간여행이라고 하면, 대부분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타임머신이나 그런 속성을 가진 장치로 인해 과거, 미래를 여행한다는 것이 기본 설정인데, 이 영화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에게 시간여행은 어떤 기회나 축복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주인공 헨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다른 공간에 놓여지게 되기 때문이다.

 



난감한건 이뿐만이 아니다.
헨리는 다른 시공간으로 옮겨질 때 발가벗겨진 채로 놓여진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뚝 떨어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것인가. 물론 옮겨진 공간에서 난처한 일-쫒기거나 연행되거나-을 겪게 되도 다시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군데군데 유머를 만들어내지만, 아름다운 아내를 곁에 두고도 시도때도 없이 사라져버리니 이 남자 인생, 이것 참 녹록치 않다.





영화는 처음부터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넘나들며,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헨리를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는 헨리의 몸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듯 끊임없이 시간을 옮긴다. 물론 이 러한 플롯은 처음부터 강한 흥미를 유발시키지만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피할 수 없다. 일단 아직 스토리를 전달시키지 못했는데도 불구, 시간을 넘나드는 초반 스토리는 관객들로 하여금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혼란을 준다. 그보다 더 큰 아쉬운 점은 끊임없이 시공간이 바뀌고 인물의 상황이 바뀌기 때문에 관객들이 감정을 끌어낼 시간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밌을 법하면, 현재로 돌아가고, 눈물이 날 듯 하면 또 과거로 날아가는 등 말이다. 이런 남편을 둔 아내로서는 무척이나 기구한 삶일 터인데, 우리는 아내의 심정에 공감할 틈도 없이 헨리의 시간여행을 쫓아가야만 했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가장 긴장이 되었던 장면은, 평화로운 어느 날 갑자기 죽기 직전의 헨리의 모습이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다. 지금과 별 다를 바 없는 헨리의 모습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모습. 이것은 헨리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과연 자신의 죽음을 본 헨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복선이 영화 후반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큰 갈등이 되는 것인데, 나는 제목이 제목인 만큼 (즉, 시간여행자의 ‘아내’인 만큼) 여기서부터 아내의 활약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헨리도 그의 아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것을 바꿀 수 있었느냐도 의문이고, 아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도 의문이었지만, 어쨌거나 아내는 그런 헨리를 끝까지 사랑하고 옆을 지켜줄 뿐이었다는 것이... 나는 아쉽게 느껴졌다.







“내가 원한 삶은 이런 게 아니었어!!! 그 어느 것도 내 선택이 없었다구.”

  애꿎게 시간여행자에게 반해버려, 기구한 사랑을 해나가는 아내 클레어의 외침이 가슴 아프게 했다. 결국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클레어는 시간여행자를 기다리게 된다. 흠, 로맨틱하긴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참으로 기구하지 아니할 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사라지는 남자를 평생 기다리다니...


"클레어, 당신에게 열녀문을 허하오."



PS. 하지만 우리 헥토르 "에릭바나"의 연기와 건장한 신체(...)를 감상하는 재미는 별 다섯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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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해방전선은 늘 보고싶은 영화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은하해방전선은 언제나 내가 상상하고 있던 이야기였다. 아,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은하야, 이런 멜로는 진짜 맨정신으로 못하겠어”라는 카피에 반해버렸고, 어쩐지 주인공 영재와 닮았을 것만 같은 감독에게 무작정 팬이라고 외쳐대고 싶었다. 어쩐지 독특할 것만 같은 우주너머의 감성, 따뜻하게 웃음이 실실 새어나올 것만 같은 하늘색의 포스터까지. 맘에 들었다고 하면, 과장처럼 느껴지려나? 아무래도 좋았다.



요 며칠 전 <황금시대>를 본 것도 윤성호 감독의 단편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발랄하고 통통튀는 이야기. 꺅, 은하해방전선 보고싶다!를 외쳤는데, 우리 바배우님의 은덕으로 드디어 영화와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오잉? 어쩐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영화를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던 나로서는, 곳곳에서 낯설음을 떨치지 못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야기는 분명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으니까. 영화를 만드는 영재는 내가 생각했던, 단편영화감독이 아니라, 장편영화를 기획하고 있는- 그러니까 회사와 팀을 꾸리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 현장에 대한 깊숙한 에피소드 혹은 영화 현장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 들을 법한 대사들이 눈에 띄었다. 찍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장대소를 터뜨릴만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과연 영화제작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친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난 재미있으니까.




우스운 건, 치사하고 야박한 영화 현장을 비웃으며 배꼽을 쥐고 있으면서도 한편, 아, 저래서 상업 영화판에 뛰어들면 안 돼. 아 정말 영화찍기란 피곤한 일이군, 논평하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영화촬영이라는 환상을 무참히 깨고 현실을 보여준달까.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소통도 지극히 어려운데, 영상으로 수많은 관객과 소통하려는 꿈은 얼마나 크고도 허황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찍는 다는 것은, 누군가와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런 질문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잘나가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영재 군이 여자 친구와는 물론, 함께 하는 스탭들과도, 영화를 본 관객들과도 소통이 어려워 고민하는 이야기다. 다만 윤성호 감독은 이러한 이야기를 소리로 다루어낼 줄 안다. 이 영화에서 ‘소리’는 무척 중요한 구실을 한다. 첫째로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영재의 쉴 새 없는 잔소리.(그러니까 여기서 잔소리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서 그것을 둘러대느라 길어져 쓸데없어진 소리), 은하의 짧지만 강한 한 마디. 혁재의 복화술, 나레이션, 수화, 침묵 등 다양한 소리가 리듬을 이루며 영화의 재미를 높인다. (무엇보다 이러한 리듬이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주연배우인 임지규, 서영주의 노련한 연기덕분이다. 긴 대사를 제 호흡으로 소화해낸 임지규와 평범한 매력을 지닌 은하의 아련함을 잘 표현해낸 서영주의 연기는 정말 멋졌다.)







특히 여기서 말과 침묵은 인물의 감정 상태를 드러나는데 중요하게 쓰인다. 때때로 영재는 끓어오르는 말을 쏟아낼 때보다, 침묵하고 있을 때 상대에게 더 큰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한다.


소리는 때때로 말을 대체함으로써, 말 이외의 것으로 우리가 상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되묻기도 한다.
우리 역시 삶 속에서 쉴새없이 떠들어 대지만, 관계를 더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말은 얼마나 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그게’ 중요해, ‘그게’ 포인트지’하는 식으로 (대체 ‘그게’ 뭐에요?!)모호한 것 뒤에 숨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말들. 자신을 변명하는 말들, 내 얘기를 남 얘기인 양 빗대어 뒤로 숨게 하는 말들. 얼마나 무용한 말들을 우리는 토해내는가. 차라리 그보다는 내 목에서 악기 소리가 나는 것이 낫고, 혹시 글로 적어 한번쯤 정화해서 뱉어내는 편이 모두를 위해 더 낫지 않을까. “영재(너)는 너무 말이 많아”


또 하나의 소리가 되는 영화의 배경음악.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흔적없이 사그러드는, 자유자재의 음악 편집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주제곡 선정도 잘 어울렸다. 이야기가 어느새 음악이 되고, 음악이 다시금 대사로 이어지는. (‘신자유청년’에서 장기하 OST도 절묘했는데, 언제나 음악을 음악 이상으로 다룰 줄 아는 감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기꺼이 멜로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 연애는 소통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으니까.) 영재와 은하의 멜로드라마. 결국 영재는 수다스러운 입으로,(이때만큼은 ‘주둥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상최고의 찌질남에 등극한다. 얼마나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미운 소리를 하는지. 그 진심이 없는, 수다는 결국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지만, 그들의 처음, 그리고 다시금 사랑을 재확인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두근거린다. (로맨스를 로맨틱하게 만들기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도너츠 가게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 영재의 GV 시간에 나눈 둘만의 대화. 그리고 안타까운 메신저 대화 (대화명도 남다르다! ‘2000년에 스물 다섯 살이었던 영재’와 ‘하루 10분씩 코펜하겐식 이별실력’이라니)

 


우리 대화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틀려. 우리는 대화를 한 적이 없어


그럼 뭐든 말해봐. 내가 이제 진짜 열심히 들을게


이제 별로 할말이 없어


그럼 내 차례. 우리 다시 만나자.


이제 별로 자신이 없어


그럼 내가 잘할게


이제 별로 마음이 없어


내가 마음을 먹을 게 마음을 곱게 먹고 좋은 꿈을 꿀게
전처럼 같이 오도카니 좁은 방에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꿈


그 맘도 시간이 판단해 주겠지


사랑해 은하야


휴가 끝 엄살 끝

 


멜로 영화인데도 불구, 처음부터 모든 배경, 대사, 소품 등이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건 피할 수 없다. 벽에 보이는 ‘힘내라, 대한민국’ 포스터라든지, 군인이라든지, 민중가요라든지, 우빨 아저씨라든지. 이런 것들이 결국 대한민국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상징하긴 하지만, 온통 상징적인 프레임 안에 갇혀있으니 조금은 갑갑한 느낌이 들긴 했다. (아마 나 역시 만들 때마다 혼자만 알아볼 수 있는 상징물을 배치해대긴 하지만, 앞으로 이런 것도 염두에 둬야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가 “혹시 가족 중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신 분은 없구요?/ 사촌 중에 조선일보 기자가 있어요. /심각하구만” 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킬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하에게 써먹은 작업멘트를 남발하는 영재의 명대사. 영재의 작업의 멘트로, 이야기를 맺자.



연애랑 영화는 비슷해 좋을수록 말이 필요없지 채플린처럼


나는 둘다 서투니까 말이 많은 거야


대신 너한테 잘할게


내 주머니에 3천원 있으면 그 3천원 다주고


4천원 있으면 4천원 다 주고


그럼 삼십만원 있으면? 주머니에 삼백만원, 삼억원 있으면?


그래도 3천원 씩은 꼭 줄게


 

 

여기까지 이렇게 길게 떠들었는데도 불구, 그래서 결국, 이 영화가 대체 어떤 영환데? 라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별거 없어요. 그냥 소통, 인간 그런 것만 느끼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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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폴더를 정리하다가 <시선1318>을 발견했다.
딱히 영화를 볼 생각은 아니었지만, 최근 윤성호 감독님의 작품에 꽂혀있던 터라,
<시선 1318> 속에 포함된 윤성호 단편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를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보았다.




일단 "청소년의 이해와 실제"는, 윤성호식 화법이 도드라진 발랄 그 자체의 작품이다.
하나의 스토리가 있기 보다는, 한 장소에서 여러명의 고딩들의 목소리를 통해 "고딩들의 현재"를 고스란히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고딩을 겨냥했기 보다는 고딩, 그 이후의 삶을 주목한다. 그들은 과연 어떠한 삶을 꿈꾸고, 그들이 보는 내일은 어떤 것인가 묻는다. 때문에 88만원 세대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대사들은 보는 대딩의 마음을 후벼판다고나 할까.

너무 발랄하고 통통튀는 윤성호식 자막과 편집 스타일에다가 전체적인 빠른 리듬 때문에 온전히 이야기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흐름과 스타일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시종일관 흐르는 비트박스. <은하해방전선> 남감독을 떠올리게 할 정도의 녹슬지 않은 말빨! 별난 감수성,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윤성호 이름 세글자를 쿵, 박아놓는다.



엄마, 내 우주는 끙끙 앓아요. 매일 발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우주가 너에게 준 숙제는 어떻게 했니?
아니요, 내가 바로 우주 인걸요.

시장이 너에게 줄 선물은 알고는 있니?
아니요, 내가 바로 선물 인걸요.

미래가 준비된 인생을 살고싶잖니?
아니요. 지금이 바로 인생인걸요.

새로운 언어가 너희를 자유케 할거야.
아니요. 내가 바로 언어인걸요.









그 다음 영화를 이어서 본 까닭은 감독이 김태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때문에 굳이 영화평을 쓴다.
단편 "달리는 차은"은 정말 양 엄지 손가락을 번쩍 세울 만큼 멋진 작품이었다.
우연히 건진 수작!!! 주저없이 별 다섯개.
역시 김태용 감독! 이라고 울부짖을 만큼 ㅋㅋ 좋은 작품이었다.

누군가는 가족의 탄생 후속편이라고 할 정도로, 따뜻한, 하지만 저릿한 대안가족 이야기다.

달리는 육상부 소녀 차은이의 새엄마는 필리핀 여성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열리고 있는 해변도시. 육상부는 해체되고 차은이가 속한 육상부는 해체된다. 더이상 달릴 수 없는 차은. 차은의 꿈따윈 관심없는 완고한 아버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엄마. 게다가 학교에 차은의 엄마가 필리핀 여성이라는 것이 소문나서 차은에게 상처를 준다. 계속 달리는 차은이. 차은의 달리기 속에 아이의 고민, 슬픔, 상처, 기쁨, 사랑 등이 한꺼번에 묻어나온다.





대사도 좋고, 연기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녀를 포착해내는 감독의 따뜻한 연출이었다.
담아내는 시선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 때문에 자칫 뻔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감수성 덩어리로 만들어 질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실제 육상 선수라는 차은, 전수영양과 그녀의 가족 식구들은 모두 일반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놀랄만큼 좋은 연기를 펼친다. 차은과 남자친구. 그리고 가족. 진심같지 않게 멀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놀랍게도, 영화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다.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차마 보여줄 수 없었던 소녀의 진심, 그 나이때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혼자 앓는 답답한 마음. 내 앞에 놓인 세상에 대한 불신과 막막함. 내가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두려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 십대에 가질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불안'들이 그의 영화에 절절히 묻어나온다. 우리는 누구나 한때, (육상부가 아니더라도) 차은처럼 달렸을 것이다. 무작정. 언젠가 그렇게 숨이 가빠 켁켁대다가도 훌쩍훌쩍 울기도 했을거다. 마치 오래 전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아련함. 그리움. 반가움.





" 너 나 좋아하지? .. 좋아하면 그러는 거 아냐."


김태용 감독은 이 대사를 써놓고 40대 감성이라는 야유를 받았다고 하지만,
이 늦은 밤, 나의 마음을 절절히 울리는 이 대사는 기필코 최고다 T-T
이 대사를 칠 때의 차은의 표정과, 그 달빛과, 골목과, 영찬의 표정이라니...


 

정말 강추다. (바이런 양은 반드시 관람할 것을 추천하는 바다! 접속해ㅋㅋ)
이런 영화라니... 김태용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다!! 차은의 그렁한 눈망울,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언제나 '인권'영화는 (인권영화이기때문에 더욱) 계몽성을 띄는 순간, 진부함이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것 같다. 인권영화는 충분히 감성넘칠 수 있고('달리는 차은'), 재기발랄할 수 있다('청소년 드라마...')는 것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여준 것이 <1318>프로젝트의 의의라면, 나머지 작품들은 (인권)영화와 계몽성의 관계를 다시금 되새기게끔 했다. 뮤지컬 형식으로 일등과 꼴지의 문제를 다룬 방은진 감독의 '진주는 공부중'도 형식이 재미있었지만 뭐랄까. 문제의식이 새롭지 않았고, 화해가 너무 쉬웠다. 나머지 작품이 아쉬웠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인상깊었던 작품이 이현승 감독의 '릴레이'다. 아이가 있는 고등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하는 진지한 고민을 코미디로 풀어낸 '릴레이'도 좋은 작품이었다. 갈등의 구조 및 결말이 단순하긴 했지만, 그 문제 의식만큼은 한번쯤 고민할 만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얼마나 사회적 지원이 시급한지 큰 목소리를 낸다. 왜 미혼모는 있는데 미혼부는 없죠? 당찬 박보영의 연기도 좋다. (하지만 역시, 미혼모 여고생은 영화 속에서도 쓸쓸히 혼자 돌아갈 뿐이다.)

예전 인권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 '계몽성에서 오는 진부함'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였다. 계몽적인 메시지만 던져도 (놀랍게도) 활어같은 이야기가 금세 꼬리를 늘어뜨리고 회가 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 역시 이 벽을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 절반은 거뜬히 넘었다!ㄷㄷ) '현재의 고등학생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주력했다는 점은 놀랄 만한 성과임이 분명하다.

인권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시선 1318>을 보니, '지금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게 유효하다는 것을 알았다. 단, 여기저기서 너무 이야기 된 사연들 말고, 미처 살펴보지 못한 마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미처 헤아려주지 못했던 마음들을 꺼내놓아야 인권 영화로 진정성을 갖는다. 그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담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가 가진 이야기를 다루는 태도다. 그 이야기에 대해 영화는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 섣부른 위로나 조언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귀기울이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만 정확히 보여줘도 충분히 관객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어쩌면 '관심'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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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영화는 지금, 현재 일어난 그 순간을 말하고 있어야 한다.
현재의 사건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결코 잊지 못할 영화가 될 것이다.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순회상영전 P-1
(굳이 밝히자면..)스포일러 농후함

 

[까칠한 자매]★★★

결코 귀엽지 않은 두 늙은 자매가 바다에서 생선도 낚고 남자도 낚는다. 굵은 팔뚝으로 생선을 조리하는 장면이 그로테스크하게 표현된다.

이윽고 자매는 남자를 낚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그를 잘 닦고 예쁜 옷을 입혀놓지만, 깨어난 남자는 기절 초풍을 하고 다시 바다속으로 뛰어든다. 결국 다시 시체로 발견된 남자. 생선과 같은 조리(자르고 굽고)를 당하고, 어딘가로 옮겨지는데. 자매의 티 타임. 남자 시체가 즐비한 다이닝 룸에서 자매는 로맨틱하게 차를 즐긴다. 그로테스크한 매력이 압권.

 



[스파이더]★★★★ 내쉬 어거튼 감독에 주연.

질은 화가 나있다. 옆좌석에 탄 잭은 질의 화를 풀어주려고 이런 저런 말을 걸지만 질의 반응은 싸하다. 곧 주유소에 도착하고, 잭은 편의점에 들어가 꽃과 귀여운 엽서, 초콜릿, 스파이더 모형을 산다.
 
주유를 하러 나간 질의 자리에 꽃으로 치장을 하고, 예쁜 엽서를 창에 붙이고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지만, 질은 대뜸 꽃과 엽서를 치우고 운전을 한다. 초콜릿을 하나씩 까서 그녀 옆에 두는 잭. 질은 결국 하나 입에 대면서 “이렇게 별 것 아닌 걸로 마음이 풀어지다니.”하면서 웃는다. 두 사람 모두 웃음을 짓는 따뜻한 풍경도 잠시. 질이 윗 거울을 열자 스파이더 모형이 튀어나온다. 옷속에 들어간 거미에 까무러치듯 놀라며 차를 세우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질. 갑자기 들이닥치는 차. 질은 멀찌감치 튀어 나간다.

당황한 잭. 곧이어 앰뷸런스가 오고, 응급처치를 한다. 두렵게 지켜보는 잭에게 말을 거는 구급대원들. 질에게 약을 투여하려고 그녀의 팔을 올리자 거미 모형이 튀어나온다. 깜짝 놀라 주사기를 든 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구급대원. 그 주사기에 눈을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잭.

스파이더 모형 하나로 벌어지는 사건이 무척이나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처음 여자가 사고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2차 연쇄사건까지 밀고나간 점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억지스럽지 않았고, 짧은 시간동안 차 안에서의 긴장, 감정의 변화, 겨우 풀어졌을 때 닥치는 갑작스런 사고 등이 무척이나 극적으로 배치되었다. 아, 단편이란 이런 것! 무릎을 쳤던 작품이었다.

 


[색션 44]★★★★★ 다니엘 윌슨

집에서 나오자마자 남자는 수상한 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문 밖으로 나오는 남자에서부터 그가 밴에 실리고, 떠나는 밴의 모습까지 한 카메라의 shot으로 잡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벤에 이어 바로 하늘 위로 상승하고,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검은 배경. 환한 조명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남자는 심문을 당한다. 뭔지 몰라도 니 죄를 고백하라고 다그치는 남자 앞에서 항변하는 주인공. 안되겠군! 곧이어 주인공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와 뇌 전기 충격기라며 가져와 주인공의 머리에 연결한다. 한껏 겁을 먹은 주인공, 뭔진 모르겠지만 다 털어놓을게요! 아빠의 비리, 엄마의 위장전입, 자신은 여자친구의 동생과 종종 원나잇을 한다는 둥 정신을 놓고 떠들어대는 주인공.

갑자기 어둠속에서 그의 여자친구가 등장해 뺨을 후려갈기고 나간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거야! 그 순간 환하게 밝아지는 공간. 서른번째 생일을 축하해. 자신의 생일파티장이다. 얼이 빠져 주인공을 바라보는 그의 가족들, 친구들. 하나씩 그곳에서 빠져나간다. 묶인 채 어처구니없이 앉아있는 남자. 조명이 꺼진다. 쓸쓸한 뒷모습.

불이 켜졌을 때의 당혹감이란! 불이 켜지는 순간, 우리는 주인공 만큼이나 뻘쭘해 질수밖에 없다. 이 점이 우수하다.

 


[하이브리드] ★★

유조차 운전하는 할아버지는 자꾸만 물을 마시고 생수병에 오줌을 싼다. 그와 동행하게 된 프랑스 남자. 둘의 기이한 조우. 마지막 장면, 프랑스 남자는 오줌이 차를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저쪽에서 차가 움직이지 않아 고생하는 여자를 발견한다. 그때 다가가는 남자 뒤로 생수병 서너개가 찰랑거리고 있는 장면- 굳이 말로 하지 않고, 장면만으로 설명해내는 방식이 좋았다.

 


[친애하는] ★★★★

애니메이션과 실사로 이루어진 다크 로맨스. 그 자체만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등 영화 아이콘들에 대한 오마주가 무척이나 흥미롭게 결합되었다. 돈 때문에 추격을 당하는 남자. 여자에게 겨우 달려와 함께 떠나자고 말하지만, 여자는 표정을 바꾸고 남자를 죽이고 돈을 차지한다. 경찰이 올 것을 대비해, 남자를 토막내 조리 재료로 쓴다. 남자의 팔, 다리, 귀, 머리 등이 햄버거 재료로 요리된다. 인형으로 표현된 이 장면은 그간 내가 노래했던, 팔다리 잘리는 B급 무비를 어떻게 실현해내는지 보여준다. 씨쥐도 저리가라. 인형으로 해도 이렇게 끔찍한 비쥬얼이 나온다! (기.절.초.풍)

급기야 경찰이 들이닥치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돌아간다. 경찰 서장은 몰래 햄버거를 하나 훔쳐먹고 오는데,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에서 수상한 물질을 발견, 다시 여자의 집으로 쳐들어간다. 작전실패. 정말 멋지다. 영화를 찍는데 한계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

 


[레슬링]★★ 동성애자 레슬링 선수 커플의 사랑이야기.

아이슬랜드 국민 스포츠인 레슬링을 연습하면서 비밀스런 관계를 유지하는 두 사람.

첫 장면에서, 앞에 누워있는 한 남자와 저 뒤쪽으로 보이는 또 한 남자의 맨 엉덩이 만으로 관계를 드러내는 장면이 탁월했다.

또 샤방하지 않은 캐릭터들로 동성애를 과장하지 않고도 캐릭터에게 애정이 갈 수 있게 한 점이 훌륭했다. 살짝 지루하긴 했지만, 마지막 장면, 헤어지기로 한 두 사람이 마지막 레슬링 연습을 하는 모습이 압권.

카메라는 계속 어깨 위만 비치고 팬한다. 두 사람의 표정만으로 둘이 지금 느끼고 있다는 것, 과연 아래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길래, 주변의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의 반응만으로 드러내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 띠에리 부파르

시나리오의 대단한 승리. 한 전쟁터. 명령을 지령받고, 결단을 내리고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알고보니 이 곳은 영화 촬영장. 영화 촬영을 전쟁터에 비유한 이 작품은 모든 영화인들을 위한 위로 시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많은 사람이 온 힘을 다해 협동하는 모습들이 그야말로 심금을 울린다.

“영화 촬영장에 비할만한 것은 바로 전쟁터다” -브레송 “촬영장에서 친구, 애인, 가족, 건강을 잃은 적이 있는 모든 영화인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등등의 삽입되는 문구도 압권이다. 한참을 낄낄대고 웃었던 영화이자, 내가 먼저 찍지 못해서 아쉽기 그지 없었던 작품.

 


[스탑]★★★ 박재옥

6분짜리 흑백 단편영화

노모를 데리고 운전하는 대머리 영석. 장난치는 노모에 신경을 쓰다 역주행하는 트럭을 피하지 못하고 핸들을 꺽는다. 사고가 나는 순간 시계가 깨져 멈추게 되고, 순간 세상이 멈춰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노모를 구하려는 영석의 갸륵한 용기. 노모의 창문 올렸다 내렸다하는 장난이라든지 영석이 큰맘을 먹을 때, 잔 머리를 옮긴다거나, 마지막 씬에서 자유자재로 시간을 멈춰 이용하는 영석의 디테일 등이 절묘한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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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멋진하루’를 보고 나서, 문득 원작이 궁금해졌다. 옛 연인에게 빚을 갚으라고 찾아간 여자. 그리고 그 둘이 돈을 받으러 다니는 하루-라는 스토리가 참신하긴 했지만, 돈을 받으러 가는 과정이 조금 반복적이어서 영화는 긴장감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과연 그런 부분은 어떻게 표현되었고, 게다가 이 장편 영화의 원작은 단편이라고 해서 그녀의 책을 찾게 되었다.




책은 줄거리 위주로, 영화와 상당히 흡사했다. 영화에서 하정우가 그랬듯 작품 속에서도 도모로의 캐릭터는 무척이나 독특했다. 이것 참 사람이 좋은 걸까, 뭔가 모자란 걸까 싶은 도모로. 그를 둘러싼 알 수 없는 여성들. 반면에 그에게 순순히 돈을 내어주는 여성들. 그들을 보면서 유키에는 자신이 사귀었던 이 남자 도모로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내가 정말 이 남자를 알았던 것일까,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의 미덕은 단순히 이 알 수 없는 남자의 캐릭터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유키에가 보기에는 참 딱해 보이는, 저기서 돈 빌리고 여기 빚을 겨우 막는 도모로의 캐릭터와 삶을 이해할만한 여지를 준다는 것이다. 그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는 여자들의 말에서. 도모로는 그런 사람이라고. 소유의 욕심이 없고, 넉넉할 때 나누고 없을 때 빌리는 것이 어렵지 않은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유키에가 새로 알듯이 관객도 도모로를 다시 알게 된다.


 



다이라 아스코는 독특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다.
이윤기의 최근 작품도 그녀의 단편을 또 한번 원작 삼아 진행되었다고 했다. 실제로 나머지 작품도 이 특유의 감수성이 넘쳐 흘렀다. 루저라서, 또 다른 루저를 위로하는데 머뭇거리는 사람들. 때로는 같은 처지이면서, 나는 아니겠지 자위하는 루저들. 그들 사이에는 묘한 동지감이 흐르고, 그들의 삶 자체가 서로에게 위로를 주는 형국이다. 이것이 변주된 여섯 개의 단편이 모아져 있는데,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멋진 하루>처럼 낯선 만남을 그려내는 데 익숙한 작가다.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낯선 처자에게 임종이 가까운 아버지의 딸 대역을 부탁하는 이야기 <애드리브 나이트>, 시어머니가 멋있어서 그 가족이 되고 싶어서 그의 아들과 결혼한 쓰키에. 그녀와 남편의 쿨하다못해 무심한 관계가 인상적이던 <해바라기 마트의 가구야 공주>, 학창시절 첫사랑을 만났지만, 무수한 성형수술로 자신을 못알아보는 그 앞에서 쿨한 척 깔깔대는 루이 이야기 <맛있는 물이 숨겨진 곳> 등 만남이 사건의 중요한 계기가 되곤 한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한 직장부하가 상사에게 고민 상담을 하면서 시작된다. 소노베를 임신시켜서 돈을 쥐어줬다. 참담하게 말하는 직장부하를 위로하는 도모아키. 하지만 그 역시 소노베에게 같은 식으로 돈을 준 상태다. 그런데 순진한 후배 겐타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도모야키를 찾아왔다. 두 사람을 말리기로 작정한 도모야키.


이 이야기도 처음엔 이상한 사람같기만 한 소노베를 도모야키가 이해하게 되는 순간- 소노베를 찾아가 겐타는 안된다고 말하자, 소노베는 ‘자신도 두렵다며, 자기도 결코 쉬운 여자이고 쉽지 않다는’ 속 마음을 밝히는 순간- 소노베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이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게다가 그녀를 쉽게 버리는 두 남자와 대조되어, 순정 100%로 등장하는 겐타의 사랑 역시 훈훈함을 더한다. 이 작품은 플롯이 좋다.


(맨 위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작가가 인물을 어떤 식으로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이야기. 참 많지만, 일본 소설에서 만나게 되는 이러한 설정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이 작품에 한정해서 분석해보자면, 등장인물들은 대게 루저라고 불릴 법한 직업-전화방, 마담 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도덕적인 신념만큼은 확고해서, 가끔 독자로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계몽적 대사를 외치지만, 종종 그것은 상대방 캐릭터를 감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것은 단순히 위로의 말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외치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 마음을 움직이는 구석이 있다. 좋은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루저다. 다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지만-<온니유>의 나카하라- 오히려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결국 위로를 받는다. 때문에 심리 위주의 서술이 주를 이룬다. 그 점이 독자로 하여금 읽기 쉬우면서 캐릭터에 가깝게 다가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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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를

우리가 직접 우리 힘으로

만들어내면 돼요! 함께 하면 되요.


삭제된 비디오 테잎을 다시 촬영하여, 스웨덴 버전으로 둔갑시켜 대여하는 제리와 마이크. 둘이 찍은 좋게말해 스웨덴판, 쉽게 말해 해적판 영상은 짧고도 어찌나 허접한지! 그야말로 장난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영상이 인기가 폭발하여 다시 살아나는 비디오가게라니. 이건 정말 판타지가 아닌가. 어쩌면 그야말로 아마추어적인 판타지가 아닌가 기우 속에, 섣불리 미셸공드리 걱정을 하고 있는 나.


허나 미셸 공드리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우리가 아는 영화를 스스로 리메이크함으로써 발생하는 재미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리메이크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셸은 영화에 대해 묻는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두 사람이 찍는 영화는 흥행에 흥행을 거듭, 결국 판이 커진 두 제작자는 여러 배우들을 기용하기 시작한다. 바로 대여점에 오는 손님들, 마을 사람들을 영화 속에 출연시킨다.
내가 참여하는 영화.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재미있는 영화가 아닌가.


영화는 놀이다.
교육받은 사람들의, 혹은 지식이 있는 사람들만의 소유물, 도구가 아니다. 헐리우드의 엄청난 시각효과를 구경하고 있자면, 영화는 마치 특별한 사람들이 만드는 대단한 어떤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때로 마법처럼, 결과물은 볼 수 있지만 모두가 그 과정을 알 수는 없다. 마법처럼 마술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을 보고 시각적 체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때때로 그러한 대단한 영화들이 남기는 공허함.
트랜스포머와 같이 최고의 기술 영화를 보고 난 뒤의 허전함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어쩌면 바로 여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영상 속에서 어느 순간 관객이 이탈되어버린 게 아닐까. 관객과의 교감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영상을 위한 영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영화의 감흥이 관객의 삶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 게 아닐까. 잊지 못할 영화는 어떻게 해서든 보는 이의 삶의 한 면을 흔들어놓으니까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참여하는 영화는 최고로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제리와 마이크는 저작권법이 들이대는 무시무시한 협박(65,000년의 형을 살아볼래?)에도 불구, 최후의, 최고의 작품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마이크! 우리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자!” 대부분의 감독 혹은 영화 관계자들이 이러한 과정으로 영화에 입문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내가 보고싶은 영화를 만들자! 잘 모르겠다고? 일단 해보자. 일단 만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곳곳에서 드러나는 공드리의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들이 시종일관 웃음을 짓게 한다.
어떤 환경도 영화를 만드는데 방해물이 될 수 없다. 공드리가 영화 속 영화제작에서 보여주는 각종 노하우는 영화 그 자체보다 흥미롭다. 바닥에 붙은 파이프오르간 촬영, 유리총격씬, 하늘을 나는 자동차 등등. 특히 모두가 함께 스토리라인을 정하는 장면은 충격적일 정도로 굉장했다. 영화는 단체작업임에도 불구 그 내부를 구성하는 작업은 철저히 개인적이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생각을 강하게 흔들어놓았다!





미셸의 영화치고 조금은 시시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정말 기우였다. 결국 모두가 함께 만든 영화를 상영한다. 텔레비전이 부서지지만, 누군가 영사기를 들고 나타난다. 창문가에 흰 커튼을 달고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 (언제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한 장면이다. 사람들의 시선. 그 표정. 정말 아름답다. 게다가 소설 <상록수>에 버금가는 라스트 씬. 비디오가게 밖에서 모두가 함께 영화를 보고 있는 라스트씬은 정말이지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미셸이 말하는 영화는, 그가 꿈꾸는 영화세계는 바로 이런 것이다.  


P.S. 미셸과 찰리카우프만이 헤어져서 상당히 섭섭하게 생각하는 1인,이었지만. 찰리에 비해 미셸은 제 길을 잘 걷고 있다. 므흣하다. 이런 그의 영화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열심히 합시다. 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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