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 A
감독 존 크로울리 (2007 / 영국)
출연 피터 뮬란, 앤드류 가필드, 알피 오웬, 케이티 라이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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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영화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소년은 14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잭’ 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오래도록 단절되었던 진짜 세상에 뛰어들 준비를 한다. 그의 착한 본성을 알고 있던 보호감찰사 테리의 도움으로 새 직장과 친구, 애인까지 생기게 된 잭. 그러나 너무도 간절했던 것들을 손에 넣을수록 과거를 숨기고 있다는 죄책감은 더욱 깊어만 진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현장에서 여자아이를 구한 잭은 일약 영웅으로 떠오르지만, 그와 동시에 보이 A의 석방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감춰왔던 과거가 드러나게 된다. 잔혹한 과거 앞에 다정했던 사람들은 차갑게 돌변하고, 세상은 소년을 밀어내기만 하는데…



캐스팅과 연기에 일단 ★★★★★

소년 특유의 섬세한 내면과 자의식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그야말로 '기똥차게' 표현해 낸 앤드류 가필드. 그의 얼굴 때문에 군데군데 마음이 아팠다. 새로운 인생을 사는 설레임과 자신의 진짜 이름을 속이고 살아가는 잭의 유약한 내면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소년의 현재와 과거의 범죄 이야기가 교차편집되어 진행된다. 소년이 10년 전에 저질렀다는 끔찍한 범죄에 다가가는 과정의 긴장이 상당하다. 도대체 소년은 어떤 '끔찍한'일을 저질렀길래. 10년 후 지금의 '잭'에게 서서히 내 마음이 열려갈수록, 과거의 사건에 다가가는 두려움이 커져만 간다.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은 깔끔한 영상. 절제되고 세련된 편집에 마음을 뺏겼다. 정말 엄지손가락이 올라갈만큼 빼어난 화면이었다. 특히 종종 뿌옇게 드러나는 화면은 소년의 기억과 불안, 흔들리는 자의식, 불투명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지난 날 악마였던 이 소년에게 두 번의 기회란 없는가? 고립시키고 추방시킴으로써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일까? 과연 이 범죄 소년들에게 감옥(고립)이 정말 도움이 되었는가?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립 그 이후에는 사회가 어떻게 돌봐줘야 할 것인가.


"너는 기억하지? 내가 소녀를 구해줬다는 것. 너는 그걸 기억하지?"

잭이 친구에게, 마치 나에게 호소하는 그 마지막 한마디가 오래토록 귓가에 남는다.
영화가 갑작스럽게 끝나고 영상 대신 어둠이 스크린을 덮는 순간, 칼로 베이는 듯한 생채끼를 느꼈다.


너는, 기억하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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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틀 선샤인
감독 조나단 데이톤, 발레리 페리스 (2006 / 미국)
출연 그렉 키니어, 토니 콜렛, 스티브 카렐, 폴 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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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리틀선샤인>은 괴짜가족의 로드무비이자 사랑스러운 코미디다. 2006 선댄스에 출품되어 화제가 되었고, 규모는 작지만 블록버스터급 감동으로 ‘마법 같은 영화’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아버지 리처드는 성공이론을 설파하는 성공학 강사지만, 그의 인생은 성공이론에 접목시키지 못했다. 엄마 쉐릴은 누구보다 가정을 생각하고 위하면서도 매번 인스턴트 음식을 식탁위에 올려 식탁의 긴장감을 조성하기 일쑤다. 헤로인 복용으로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 에드윈은 사돈에게 포르노잡지를 사달라고 하는 괴짜 노인이다. 그런가하면 아들 드웨인은 몇 개월째 침묵 수행으로 지필로만 대화하고 있고, 가끔 노트에 쓴다는 말도 “I hate everyone" 정도다. 뱃살이 볼록 나온 통통한 막내 올리브는 미인대회 우승을 꿈꾸며 그녀들의 행동을 흉내 낸다. 여기에 동성 애인에게 배신을 당해 자살시도 후 퇴원한 저명한 교수 삼촌 프랭크가 가세한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대책 없는 가족구성이다.

 

‘미스리틀 선샤인’이라는 어린이 미인대회에 올리브가 참가하게 되면서, 후버가족의 여정이 시작된다. 누구도 인생의 패배자가 되길 원치 않지만, 그들이 여행길에서 겪는 악재와 불운은 그들을 금새 주저앉게 만들고 만다. 시종일관 덜컹거리던 낡은 버스는 급기야 멈춰선다. 고장 난 버스를 밀며, 작전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탑승 장면(포스터에 그려진 장면)은 이 영화에서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스스로 올라타야 하지만, 손 내밀었을 때 잡아주고 응원해줄 이가 있는 곳. 그 지점에 있는 가족을 보여준다. 그들의 화해와 위로는 결코 통속적이지 않다. 이 점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된다. 자기가 이곳에, 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 우리의 가족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위로다. 이는 모든 관계가 성립하는 전제 조건이 되는 감정이다. 그들은 가족이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버스의 고장에도, 가족의 갈등 속에서도 계속 달리게 하는 동력, 올리브가 무대 위에서 끝까지 춤 출 수 있게 만드는 동력, 지긋지긋한 관계 속에서 달아나고 싶어도 결국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동력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때문에 후버가족은 여전히 끊임없이 갈등하겠지만, 아마 서로를 포기하는 일만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이러한 화해에 도달하기까지 큰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 어디가 아픈지 알았을 뿐이고, 그곳에 손 한번 올려놓았을 뿐이고, 등 돌리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그저 함께 있었을 뿐이다. 루저들만 모인 후버 가족을 어느 누가 패자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리처드가 목청껏 외치는 성공원칙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도 불구, 이 영화가 일신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성공의 소중한 비밀을 짐작해볼 수 있으리라.

Posted by 프로듀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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