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극장이었다. 오전부터의 일정으로 피곤했고, 그날은 영화 <더 폴>이 상영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포스터는 전혀 끌리지 않지만, 입소문 자자한 영상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 이런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줘야 한다는 당위성(4년간 28개국에서 촬영했다는데...) + 어쩐지 내일 되면 아쉬울 것 같은 마음때문에 입장했다. 

더 폴, 오디어스와 그 환상의 문으로. 

 


 * <더 폴>은 스토리텔러 로이와 그 이야기를 듣는 소녀 알렉산드리아가 만들어내는 판타지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를 이용하기 위해 거짓 이야기를 지어내지만, 소녀는 그 이야기를 실제로 꿈꾸고 믿어버린다. 어린 소녀는 거짓말 까지도 마법으로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는 현실이 된다.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는, 영상만큼이나 환상적이다.   



* 만만한 판타지 영화가 아니다. 이야기 하는 자의 권력과 듣고자 하는자의 욕망이 첨예하게 담겨져 있고, 그 사이에 환상을 지키려는 자와 현실을 깨우려는 자의 갈등이 면면이 담겨져 있다. 알렉산드리아가 로이의 거짓말을 믿을 수록 로이의 갈등은 커지고,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의 판타지를 깨뜨릴수록 소녀의 갈등이 커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환상적인 동화같은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가능한한 현실과 같은 환경에서 촬영을 했단다. 즉, 한번도 연기경험이 없고 때묻지 않은 실제 꼬마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영화속 설정을 소녀와 배우들이 정말 믿도록 설정해두었단다. 촬영기간동안 다른 배우와 스탭들은 정말 로이가 영화속에서처럼 불구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단다. 그런 믿음과 리얼리티가 있었기에 더욱 환상적인 영화가 나올 수 있었겠지!  

*이 영화는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클로즈업한 사람의 얼굴. 페이드 아웃되면서 사막의 풍경이 그려진다. 사람의 얼굴이 고스란히 사막의 풍경으로 겹쳐지는 마술같은 영상. 탄성을 질렀다.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이다.  

*로이의 모험담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악당 오디어스를 향한 다섯 영웅의 복수. 오디어스의 노예, 오디어스 때문에 소중한 나비를 잃은 천재 찰스 다윈, 오디어스 때문에 누명을 쓴 폭파전문가 루이지... 사연을 가진 영웅들이 복수를 향해 모험을 떠난다. 그 복수극은 때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유치하기도 하고, 달콤한 로맨스를 그려내기도 하고, 만화 같은 장면들을 만들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야기의 결말이다. 이야기 하는 자, 루이는 자신의 절망 때문에 모든 이야기를 헝클어뜨리고자 한다. 그것은 현실적이고, 어른다운 결말이다. 그들은 하나씩 죽어가고 실패와 절망에 가까워진다. 듣는 자, 알렉산드리아는 결코 그 세계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그 환상에 뛰어들어 어떻게서든 루이를 막고자 한다. 환상을 지키려는 소녀의 몸부림이 어찌나 간절하고, 애절한지 정말 눈물이 핑돌 지경이었다. 이야기는 하나의 세계다. 누군가에겐 하나의 세계다.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라며 달려드는 알렉산드리아. 그녀의 진심이 이야기를 지켜낼 수 있을까. 나 역시 결말에 치달아 갈수록 발을 동동 구르면서 보았다. 어서 뒷이야기를 알려달라고 조르는 알렉산드리아처럼.

 




 

* 나 역시 이야기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중 하나다. 난 언제나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좋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알렉산드리아가 사랑스러웠나보다. 나에게도 언젠가 그럴 때가 오리라. 내가 만든 세계와 현실세계가 부딪치게 되는 그 때. 


  

그때 과연 알렉산드리아처럼 나도 온몸을 던져 내 세계를 구해낼 수 있을까. 끝까지 저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영화지만 나에게는 이런 이야기 자체가 희망처럼 다가왔다. 이야기라는 거대한 세계를 만난, 내가 갖고 있는, 만들어 나가는 한 세계를 확인받을 수 있었던 희망. 그래서 좋았다.


Posted by 프로듀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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