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고수는 어둠 속에서도 제 눈에서 빛을 뿜으며 걸어나가는 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12.03 20091203_행복을 선택하는 노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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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정적인 것에 취약하다. 그에 비해 행복에 대해서는 꽤 견고하다. 행복한 일이 생기면, 한번도 아니고 두 번 이상 좋은 일이 겹친다면 순순히 기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에이, 운이 좋았어의 단계를 너머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면, 필시 대부분의 사람은 환호성을 지름과 동시에 그 행복을 의심해본다.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교과서에 수록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반전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아니, 종종 우리는 삶 속에서 인력거꾼 김첨지의 몸짓을 재현한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일이 잘 풀린다 했더니만.’

 

불행의 연속은 감히 그 끝을 상상할 수 없게끔 만들어버리는 데에 비해, 행복의 연속은 일찌감치 끝을 예상하고 불안을 만들어낸다. 그만큼 우리는 행복에 익숙하지 않다.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행복은 마치 손가락을 벌리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잠자리 같고, 어쩌다 손아귀로 날아 들어온 한 마리의 나비 같기만 하다. 불행은 이불같이 일상을 잠식해버리는데, 행복은 흐릿한 일상 에 켜진 초처럼 존재한다. 때때로 우리는 기쁜 일이 한껏 포진 된 일상 속에서도 습관처럼 불행에 반응한다. 행복의 초가 빛을 뿜는 와중에도 바로 아래 고여있는 그림자, 검은 그을음에 마음을 빼앗겨버릴 때도 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행복의 불안을 위안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우리는 지속된 기쁨보다는 낙담에 익숙해져 있는 모양이다.

 

몇 가지 즐거운 일 가운데 한 가지 근심이 생겼다. 내 하루를 100으로 보았을 때, 기쁨과 근심에 할당된 나의 감정은 몇으로 볼 수 있을까? 잠깐 기뻐하고 종일 걱정을 궁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걱정이 그다지 심각한 것도 아니었거니와, 어쩐지 내가 습관적으로 걱정을 생각하기로 선택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행복으로 좌표를 맞춰두어도, 나침반이 항상 북쪽을 가리키듯이 금새 돌아보면 마음이 근심으로 기운다.

 

2

 

이럴 때 근심을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행동으로 사건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생각을 바꿔 부정하고 싶은 상황을 충분히 납득하는 것이다. 매일 밤잠을 뒤척이게 하지만 남에게 말하기 참 쑥스러운 고민을 살짝 언급하자면, 역시 지나친 팬심에 관한 문제다. 사람을 향한 넘치는 애정 탓이라고나 해둘까. 2주 전부터 나의 온 마음이 다음주에 있을 (나로서는 그야말로) 팬 미팅에 가있는데 그것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상념이 든다. , 막상 적어놓으니까 과연 이것을 근심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과도한 설렘이 공황을 유발한달까. 어쨌거나 충분히 기뻐해야 할 현실을 누리기 위해 떨리는 심장을 멈출 수도 없고, 나름대로 해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읽게 된 글이 있어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대부분 여리다. 그래서 사소한 변화도 우리에게는 중요해진다. 정말 그렇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시간도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납득하는 것이 삶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이, 지금이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

 

세상의 이치는 종종 틈새에 숨어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것만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하루가 닫히고 열리는 그 틈새, 날씨가 맑아졌다 흐려지는 그 틈새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다. 납득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네 근심은 해결 되었느냐구? 글쎄, 아무래도 직접 사건에 뛰어들어 행동한 뒤, 그것이 어찌되었건 삶이라는 범주 안에서 납득하면 되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근심 혹은 설렘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속을 좀 들썩 일수도 있겠지. 아래 글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지만, 위안은 주었다.

 


3

 

김연수 작가의 칼럼이다. 그가 이제껏 써온 수많은 글들 가운데 내가 유독 아끼는 글이기도 하다. (그의 가정 생활이 살짝 엿볼 수 있어서 아끼고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하늘을 힐끔 쳐다보는 것만으로

 

(…)다른 집과 비슷하게 우리 집에도 아이가 하나뿐이니 형제끼리의 그런 야단법석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하루 종일 사촌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루 정도가 지나자 그 북적거림이 피곤해지기 시작한 나와는 달리 아이는 사촌들이 차를 타고 떠나는 그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아이는 차에 오르는 사촌들에게 집에 가서 더 놀자고 말했다. 그런 아이에게 우리는 이제 인사를 하라고 권했다. 그 순간, 아이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이는 끝내 인사를 하지 않았고, 자동차가 떠나자마자 엉엉 울어버렸다.

 

엉엉엉, 내 경험에 따르면 그럴 때 흘리는 눈물보다 가슴이 아픈 눈물은 없었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흘리는 눈물. 함께 있으면 너무나 좋을 것이 뻔한 사람들과 헤어질 때 흘리는 눈물. 왜 세상은 우리끼리 영원하게 행복할 수 없을까? 어릴 때 명절이 보내고 난 뒤 며칠 심각한 우울증에 걸릴 때면 나도 그런 의문을 느끼곤 했다. 나는 아이를 달랬다. 아무리 좋은 시간도 지나고 나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납득해야만 하는 게 삶이라는 걸 설명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직 나도 제대로 납득하지 못하는데.

 

살아오면서 나도 여러 번 삶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았다. 추억이 그 상처를 달래주는 힘이 있다고는 하지만, 순간의 경험만큼 생생하지는 못하다. 아무리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비디오로 촬영해도 지나가고 나면 그 순간은 더 이상 내 것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삶에서 배워야만 하는 건 바로 이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납득하는 일이라고 나는 여러 번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걸 익히는 일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매일 나는 그 일을 익히려고 애쓴다. 나의 스승이라면 매일 변하는 날씨다. 화창했다가 또 흐리다가, 햇빛이 나오는가 싶으면 비가 내리고 어느새 계절이 바뀐다.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 늘 하늘을 쳐다본다. 거기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변하는 날씨는 내게 살아있다는 것도 그와 같다고 말해준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그 날씨를 즐길 것인지, 아니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날씨를 탓할 것인지.

 

우리는 대부분 여리다. 그래서 사소한 변화도 우리에게는 중요해진다. 그런 변화에 맞서 여린 마음을 감춰두는 건 우리가 잘하는 짓이다. 하지만 그렇게 변화에 버티어보면 우리는 상처를 입게 된다. 이게 바로 내가 날씨에게서 배운 가장 단순한 진리다. 그러므로 나는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볼 때마다 내가 참으로 변화에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여리다는 건 내가 과거나 미래의 날씨 속에 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나는 매순간 다른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나는 날마다 그날의 날씨를 맛보는,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다.

 

다행이 우리는 원래 그렇게 태어난 모양이었다. 엉엉엉 울던 아이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울음을 그치고 뭘 하면서 놀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집 근처 공원에 가서 오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호수에 사는 오리는 볼 수 있는 날도 있고, 볼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과연 오리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오리를 보러 공원까지 갈 수는 있었다. 오리는 한참 지나서야 물풀 사이에서 뭍으로 걸어 나왔다. 밤이 되면 오리는 다시 어딘가로 숨어들어 잠들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집에서 잠들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깨어난다면 새로운 날이 시작됐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늘을 힐끔 쳐다보는 것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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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프로듀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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