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해방전선은 늘 보고싶은 영화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은하해방전선은 언제나 내가 상상하고 있던 이야기였다. 아,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은하야, 이런 멜로는 진짜 맨정신으로 못하겠어”라는 카피에 반해버렸고, 어쩐지 주인공 영재와 닮았을 것만 같은 감독에게 무작정 팬이라고 외쳐대고 싶었다. 어쩐지 독특할 것만 같은 우주너머의 감성, 따뜻하게 웃음이 실실 새어나올 것만 같은 하늘색의 포스터까지. 맘에 들었다고 하면, 과장처럼 느껴지려나? 아무래도 좋았다.



요 며칠 전 <황금시대>를 본 것도 윤성호 감독의 단편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발랄하고 통통튀는 이야기. 꺅, 은하해방전선 보고싶다!를 외쳤는데, 우리 바배우님의 은덕으로 드디어 영화와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오잉? 어쩐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영화를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던 나로서는, 곳곳에서 낯설음을 떨치지 못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야기는 분명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으니까. 영화를 만드는 영재는 내가 생각했던, 단편영화감독이 아니라, 장편영화를 기획하고 있는- 그러니까 회사와 팀을 꾸리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 현장에 대한 깊숙한 에피소드 혹은 영화 현장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 들을 법한 대사들이 눈에 띄었다. 찍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장대소를 터뜨릴만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과연 영화제작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친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난 재미있으니까.




우스운 건, 치사하고 야박한 영화 현장을 비웃으며 배꼽을 쥐고 있으면서도 한편, 아, 저래서 상업 영화판에 뛰어들면 안 돼. 아 정말 영화찍기란 피곤한 일이군, 논평하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영화촬영이라는 환상을 무참히 깨고 현실을 보여준달까.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소통도 지극히 어려운데, 영상으로 수많은 관객과 소통하려는 꿈은 얼마나 크고도 허황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찍는 다는 것은, 누군가와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런 질문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잘나가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영재 군이 여자 친구와는 물론, 함께 하는 스탭들과도, 영화를 본 관객들과도 소통이 어려워 고민하는 이야기다. 다만 윤성호 감독은 이러한 이야기를 소리로 다루어낼 줄 안다. 이 영화에서 ‘소리’는 무척 중요한 구실을 한다. 첫째로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영재의 쉴 새 없는 잔소리.(그러니까 여기서 잔소리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서 그것을 둘러대느라 길어져 쓸데없어진 소리), 은하의 짧지만 강한 한 마디. 혁재의 복화술, 나레이션, 수화, 침묵 등 다양한 소리가 리듬을 이루며 영화의 재미를 높인다. (무엇보다 이러한 리듬이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주연배우인 임지규, 서영주의 노련한 연기덕분이다. 긴 대사를 제 호흡으로 소화해낸 임지규와 평범한 매력을 지닌 은하의 아련함을 잘 표현해낸 서영주의 연기는 정말 멋졌다.)







특히 여기서 말과 침묵은 인물의 감정 상태를 드러나는데 중요하게 쓰인다. 때때로 영재는 끓어오르는 말을 쏟아낼 때보다, 침묵하고 있을 때 상대에게 더 큰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한다.


소리는 때때로 말을 대체함으로써, 말 이외의 것으로 우리가 상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되묻기도 한다.
우리 역시 삶 속에서 쉴새없이 떠들어 대지만, 관계를 더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말은 얼마나 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그게’ 중요해, ‘그게’ 포인트지’하는 식으로 (대체 ‘그게’ 뭐에요?!)모호한 것 뒤에 숨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말들. 자신을 변명하는 말들, 내 얘기를 남 얘기인 양 빗대어 뒤로 숨게 하는 말들. 얼마나 무용한 말들을 우리는 토해내는가. 차라리 그보다는 내 목에서 악기 소리가 나는 것이 낫고, 혹시 글로 적어 한번쯤 정화해서 뱉어내는 편이 모두를 위해 더 낫지 않을까. “영재(너)는 너무 말이 많아”


또 하나의 소리가 되는 영화의 배경음악.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흔적없이 사그러드는, 자유자재의 음악 편집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주제곡 선정도 잘 어울렸다. 이야기가 어느새 음악이 되고, 음악이 다시금 대사로 이어지는. (‘신자유청년’에서 장기하 OST도 절묘했는데, 언제나 음악을 음악 이상으로 다룰 줄 아는 감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기꺼이 멜로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 연애는 소통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으니까.) 영재와 은하의 멜로드라마. 결국 영재는 수다스러운 입으로,(이때만큼은 ‘주둥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상최고의 찌질남에 등극한다. 얼마나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미운 소리를 하는지. 그 진심이 없는, 수다는 결국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지만, 그들의 처음, 그리고 다시금 사랑을 재확인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두근거린다. (로맨스를 로맨틱하게 만들기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도너츠 가게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 영재의 GV 시간에 나눈 둘만의 대화. 그리고 안타까운 메신저 대화 (대화명도 남다르다! ‘2000년에 스물 다섯 살이었던 영재’와 ‘하루 10분씩 코펜하겐식 이별실력’이라니)

 


우리 대화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틀려. 우리는 대화를 한 적이 없어


그럼 뭐든 말해봐. 내가 이제 진짜 열심히 들을게


이제 별로 할말이 없어


그럼 내 차례. 우리 다시 만나자.


이제 별로 자신이 없어


그럼 내가 잘할게


이제 별로 마음이 없어


내가 마음을 먹을 게 마음을 곱게 먹고 좋은 꿈을 꿀게
전처럼 같이 오도카니 좁은 방에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꿈


그 맘도 시간이 판단해 주겠지


사랑해 은하야


휴가 끝 엄살 끝

 


멜로 영화인데도 불구, 처음부터 모든 배경, 대사, 소품 등이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건 피할 수 없다. 벽에 보이는 ‘힘내라, 대한민국’ 포스터라든지, 군인이라든지, 민중가요라든지, 우빨 아저씨라든지. 이런 것들이 결국 대한민국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상징하긴 하지만, 온통 상징적인 프레임 안에 갇혀있으니 조금은 갑갑한 느낌이 들긴 했다. (아마 나 역시 만들 때마다 혼자만 알아볼 수 있는 상징물을 배치해대긴 하지만, 앞으로 이런 것도 염두에 둬야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가 “혹시 가족 중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신 분은 없구요?/ 사촌 중에 조선일보 기자가 있어요. /심각하구만” 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킬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하에게 써먹은 작업멘트를 남발하는 영재의 명대사. 영재의 작업의 멘트로, 이야기를 맺자.



연애랑 영화는 비슷해 좋을수록 말이 필요없지 채플린처럼


나는 둘다 서투니까 말이 많은 거야


대신 너한테 잘할게


내 주머니에 3천원 있으면 그 3천원 다주고


4천원 있으면 4천원 다 주고


그럼 삼십만원 있으면? 주머니에 삼백만원, 삼억원 있으면?


그래도 3천원 씩은 꼭 줄게


 

 

여기까지 이렇게 길게 떠들었는데도 불구, 그래서 결국, 이 영화가 대체 어떤 영환데? 라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별거 없어요. 그냥 소통, 인간 그런 것만 느끼면 되요."

 

 




Posted by 프로듀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