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진중권 (한겨레출판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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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진정한 의미의 특권층은, 소위 말하는 1%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고르고 그걸로 밥을 먹을 수 있으면 그거야말로 특권층이거든요. 후자의 1%는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될 수 있어요. (진중권)

이처럼 한번 어떤 일이 좌절된 것에 부노하고 나면, 그 다음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굉장히 강하게 추구하게 됩니다. 분노의 경험이 강한 동기부여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죠. (정재승) 

이타주의는 절대로 안먹힐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타주의라는 건 뒤집힌 이기주의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사회에 대해 생각할 때는 나와 남이라는 구분을 떠나서 '그냥 사람이다'라는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되거든요.(홍기빈)

당신이 만약 어떤 식품을 구매했다면, 당신은 그 식품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겁니다. (안병수)

자신이 감추고 싶은 부분을 감추는데 쓸 에너지를 자기 객관화해서 자존감을 가짐으로써 안 쓰기 시작하면 그만큼의 법보가 생기는 거죠. 이 법보가 생기면 비로소 남을 쳐다볼 여유가 생겨요. (김어준)


같이 읽으면 좋은 책
  • 정의론 - 존 롤스 지음 |황경식 옮김

 

요즘 정말 '화'날 일 많다. 뉴스보고 신문보면 여기저기 성질 돋우는 기사들 투성인데, 화내기는 쉬워도 화풀기는 어렵다. 그래서 '욱'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미 다들 성이 돋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일까, 살짝만 찔러도 '욱' 화를 내뱉는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올해 인터뷰특강이 <화>라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예전에는 사회문제라고 하면, 소위 어느 특정 계급 위주의 문제였다. 이를테면, 노동자면 노동자, 어린이면 어린이, 혹은 어느 단체 등등. 2009년 지금의 사회 문제는 전 국민 범위다. 최근의 문제거리- 이를테면, 비정규직 혹은 행정인턴, 용산참사, 신종플루, 등등은 어느 계층, 나이대도 빠져나갈 수 없는 범위망을 자랑하고 있다.  전 국민이 뉴스를 보며 '내 문제다'싶어 한숨을 한번만 쉬어도 금세 땅이 꺼져버리지 않을까. 이러다가 전국민이 노이로제에 걸리는 사태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의 사태에 각자의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행동해야 한다. 언제나 화만 내고 있을 수는 없잖은가.

 

그러므로 더이상 내 문제, 네 문제를 갈라서는 안될 때다. 홍기빈 연구원 말마따나 '나와 너'를 가르는 순간 연대는 불가능하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공감하는 능력이고, 네 일도 내 일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연대의식이다. 물론 개인적인 문제가 커질 수록 사람들은 연대에서 멀어지고, 서로 참견하지 않으려 하고, 내새끼 내가족을 더 끌어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제는 네 문제가 언제라도 내 문제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나는 행동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꾸준함이라고 진중권은 말한다. 화를 내는 것도 '욱'하고 뿜고 뒤돌아서 계면쩍어질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분노를 갖고 그것을 창의적으로 표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분노, 그 즐거운 분노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목표로 데려다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진중권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제 우리는 대중의 화를 '기획'해야 한다.

 

화가 날 일은 비단 정치문제 뿐이 아니다. 금태섭의 강의는, 분노의 시대, 불안한 시대정서 때문에 다시금 추동되고 있는 사형제도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한다. '사형을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이제 너무나 오래 던져져 낡아버린 질문이지만, 여전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금태섭 전 검사는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으로 한때 화제가 되었던 안병수는 '화난 음식이 화를 부른다'는 흥미로운 주제로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우리의 생활과 감정을 얼마나 끔찍하게 비틀 수 있는지 경고한다. 김어준은 자신의 경험과 관련하여 어째서 '성의 출발점이 타자에 대한 상상력'인지 유쾌한 어투로 생생하게 전해준다.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는 습관을 바꿔야한다, 이 책을 읽고, 마치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가지 습관>에나 나올 법한 이 메시지가 떠올랐다. 쉽게 선택하는 음식, 메뉴고르듯 쉽게 결정해버리는 수많은 판단들, 너무나 쉽게 내버리는 화, 우리는 이런 것들을 다시 재고해야 한다. 왜 내가 화를 내는가? 왜 내가 그것을 먹는가? 한번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생활양식을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How to 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내가 왜 화를 내는가? 내 숨기고 싶은 부분이 들통나서 화가 나는가?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서 화가 나는가? 그 까닭은 무엇인가? 곰곰히 들어가보면 결국 '남의 일'처럼 보이는 사건에서도 '나의 문제'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문제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사람이 왜 화를 내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는 옆사람의 마음도 짐작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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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책 고미숙의 <임꺽정, 길위에서 펼치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의 리뷰임에 동시에, 2009년 8월, 9월 수유+너머에서 곰쑥쌤과 백수동지들과 공부하면서 배우고 생각했던 시간을 총!정리해놓은 글이기도 하다. 뭐, 쓰고 나니 그렇게 되었다. 고로, 뭘 보고 배웠는지 궁금하시다면 스크롤의 압박을 이겨보시라, 이 말이다***

  






 

1. 백수(白手), 새로운 길을 열다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나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모두가 당연시 따르는 ‘학교-취직-결혼’의 운동벡터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신입사원이었다. 대학 새내기 때만해도 내가 선택한 전공공부를 하며 ‘나만의 길’을 개척하겠노라고 기세등등한 나였는데! 지금의 나는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분야 쪽에서 직장을 갖고 명함을 갖고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심하는 그런 사회 초년생이 되어있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열심히만 하면 될까? 열심히 출근하고, 열심히 시키는 일 하고, 퇴근하기 직전까지 열심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승진을 할테고, 그 다음 단계의 직원이 되겠지. 내가 원하는 돈을 월급으로 받으려면 한 십년쯤 일하면 될까? 그때쯤에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으려나? 이런 상상을 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앞날이 너무나 명확하고 뚜렷하고 생생했다. 아마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면 그렇게 되리라. 어째서 이렇게 뚜렷한 미래가 두려움으로 다가올까! 분명 두려움이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내가 나 자신의 이름을 잃고, 그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 혹은 무명의 직장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얼른 이 고리를 끊고 이 컨베이어 시스템처럼 굴러가는 인생의 행로에서 탈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랬다. ‘백수’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참 쉬웠다.


내가 선택한 백수는 직장을 잃은 상태가 아니라, 백수라는 이름으로 변신하여 다른 삶의 방향을 모색코자 한 것이었다. 이런 나의 심오한(?) 계획을 알 리 없는 지인들은 으레 나를 그저 아홉시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19년만에 최악, 청년실업 대란’의 일개 병정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대수냐. 이제부터 정신만 바짝 차리면 상상도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말이다!

 

2. 다른 길, 임꺽정을 만나다!



하지만 백수(白手)를 꾸려가는 일은 쉽지많은 않았다. 일단 백수를 선포하고 나니, 나는 원뜻 그대로 흰 손, 즉 빈 손 일 뿐이었다. 과연 이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본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교에서 못다한 진짜 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껏 늘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돈 벌 궁리만 하다보니((그 마저도 결국 궁리해내지 못했지만), 이런 낯선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가 않았다. 도움을 줄 친구도 선배도 찾기 어려웠다.



이런 내게, 『임꺽정』은 그야말로 내 삶의 문제를 대면하고 있는 텍스트였다. 그야말로 배움과 삶이 접속될 수 있는 기회였다. 내 백수생활과 그들의 생활을 비교해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이지 않을까! 삶에의 질문에 답을 품고 있는 책이야말로 진짜 고전이 아닐까! 이렇게 절실한 책이니, 한 문장문장이 내게 지도처럼 보이고, 단어단어가 암호처럼 자극이 되었다. 호적수를 만난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책장을 넘겨갔다. 책 속에 난 길을 따라, 2009년 지금의 백수가 유쾌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백수의 고민이 무엇인가?


아니, 단도직입적으로 나의 고민이 무엇인가 살펴보자. 이제, 어떻게 돈을 벌고 먹고 살 것인가? 나만의 길, 나만의 재주를 어떻게 발견하고 갈고닦을 것인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고 이어나갈 것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있는 질문이리라. 저자 고미숙은 이러한 청년들의 고민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이에 걸맞게 책 목차를 꾸려놓았다. 경제-공부-우정-사랑! 친구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어도 숱한 고민들이 대부분 저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과연 고미숙이 임꺽정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다른 길은 무엇일까.

 

3. 배움이 인생을 바꾼다!


 
저자 고미숙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배움, 앎이다. 공부는 그야말로 존재를 변신시켜줄 수 있는 ‘비법?게 공부의 어감은 그야말로 지리멸렬하고 진부하겠지니다. 나를 성장시키는 공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요한 배움이 진짜 공부가 되는 것이다.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존재변신을 꾀할 수 있는 공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그 방면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공부 등등.


신분이 나뉘어 있고, 정규교육은 받아볼 기회 없었던 임꺽정과 친구들에게는 그저 놀이 연마, 기술 연마가 공부가 되었다. 혹은 앞길을 열어갈 수 있는 사주 명리학. 도학을 통해 운명처럼 놓여진 자기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이 달인이 되어 간다. 하루 종일 그것만 집중하고 반복하기 저절로 달인이 될 수 밖에. 더군다나 달인이 되는 데의 핵심은 무목적이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 취직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그냥 하는 공부, 재미가 동해서 하는 공부래야 내 흥(興 )으로 공부해나갈 수 있다. 나는 이런 공부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누구에게나 이렇게 습득한 잔재주가 있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쓸데없게만 보이지만, 남다른 지경에 다다른 잔재주들. 우리가 소위 취미라고 배우고 익혔던 것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진짜 필요한 공부라는 것이다. 이제껏 우리의 공부는 주객전도가 아닌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진짜 공부를 해야할 때다.


공부는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짜 공부를 하게 되면 몸도 저절로 건강해진다. 재미가 있고, 간절한 필요가 있는 공부는 집중력이 절로 드니 정신이 단단해질 것이요, 사념이 들 틈이 없으니 쓸데없는 망상이나 고민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몸에 대해 공부하는 것 역시 진짜 공부라고 말한다. 이것이 곧 수행이다.


습관적인 두통, 복통, 신경통에 반사적으로 약부터 찾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신체를 공부하고, 수행으로 생활습관을 단련하다보면 절로 공부도 되고, 건강도 찾을 수 있다. 수행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284p) 그렇다고 수행이라는 것이 대수로운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의 작은 습관들을 고치는데부터 우리가 의식하는 순간 그것이 수행이 되는 것이 아닐까.

 



4. 어떻게 배울 것인가 - 놀이와 이야기, 친구


무엇을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어떻게 공부하는가이다. 고미숙은 임꺽정과 친구들의 일화를 들어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다. 바로, 놀이와 이야기, 그리고 친구다. 놀이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놀이의 공부화, 노동의 놀이화를 의미한다. 놀이-공부-노동이 한 궤도에 있다면 얼마나 인생이 즐거울까! 그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경지인 것이다. 능률이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 생각만 해도 신명이 나는 일이다.


또 중요한 것이 바로 이야기, 말이다. 꺽정이와 칠두령들은 모두 한 입심을 자랑하고 있다. 그들의 말은 무엇보다 솔직하다. 속내를 활짝 드러내어 보이니, 그 말도 서로의 몸과 가슴을 막힘없이 통하게 만든다. 꺽정이와 친구들에게서 이러한 점은 진정 본받을 점이자 부러운 점이었다.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혹은 “네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어.”


우리는 서로 마주앉아 대화를 하면서도 모르는 게 많다.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에도 서툴다. 모든 말다툼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화되는 것이 아닐까? 내 본심을 한번 포장한 에둘러 말하기는 의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때때로 칼날같이 곤두선 말은 그야말로 무기보다 무섭게 마음을 찔러댄다. 그럼에도 속시원히 말다툼, 혹은 몸다툼하지 않고 꽁하게 되니 마음과 기운이 막힐 수밖에. 때문에 우리는 친구를 붙잡고 한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고 나서도, 때때로 가슴의 답답함을 온전히 털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속 시원히 정곡을 찔러 말하자. 서로를 성장시키지도 않고, 자극시키지도 않는 수다는 멈추고 본심을 드러내자. 상처받을까봐 솔직히 말을 못하겠다고? 내가 정녕 꺽정이와 그 친구들 못지않은 의리를 품고 있다면, 그 마음속에서 뱉어내는 말이 결코 악의적일리 없다. 오장육부가 건강한 친구라면, 의리가 담긴 날센 말도 온전히 받아주리라.


책을 읽는
내내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의 의리와 패기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정말 천하가 두렵지 않을 만큼 귀한 동지들. 이야기건 학문이건 즐겁게 나누기 위해서는 일단 친구, 관계의 문제를 잘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철저히 관계의 척도를 의리로 삼는다. 그야말로 의리에 죽고 산다. 때문에 오해가 생기든, 잘못을 저지르든 뒤끝이 없다. 의리, 신의라는 관계의 초석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들의 관계의 초석은 너무나 나약한 것이 아닐는지.


소위 인맥이라는 것을 맺고 끊는 척도는 무엇인가.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못한가. 친구 존재의 유용함이 아니던가. 때문에 우리의 관계는 참으로 쉽게도 끊어진다. 함께 붙어 지낼 때는 반짝 친하다가 서로의 갈길 찾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도 인맥이라는 명목으로 관계를 맺었다면, 광증에 시달리는 오주는 벌써 따돌림?면목을 과연 알아볼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때로 그 사람의 이름보다 직분, 소속이 서로의 뇌리? 관계 맺을 일이 참 잦다. 하지만 백수라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꾸려나갈 백수라면, 기꺼이 의리의 덕목을 체득해야 한다. 지금 이 세대에서 의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받는 친구 역시 주는 친구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 책을 열심히 읽어서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든지 혹은 스트레스에 찌들지 않도록 함께 산에 오른다든지 하는, 세상엔 돈 말고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들이 억수로 많다.(...) 어느 쪽으로든 출구를 터서 매끄럽게 흐르게만 해도 세상은 한층 넉넉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정의 경제학이야말로 청년실업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148p)




친구는 머물러 있는 관계가 아니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꼭 친구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 물질인가? 한 끼의 밥뿐인가. 분명 그것 말고도 주고받을 것이 ‘억수로’ 많을 것이다. 관계에 적합한 우정의 경제학 꾸리기. 우리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고민할 부분이다.


또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마치 청석골과 같이. 그것이 스터디가 될 수도 있고 토론의 장이 될 수도 있겠다. 매일 지난 학창시절 이야기만을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발전이 있는 대화가 오가는 만남이라면, 매번 새롭고 매번 즐거울 수 있지 않겠는가!

  
 

5. 건강한 신체, 건강한 사랑


백수 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세대를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게 우선이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 각종 ‘신종’ 질병은 신체만을 위협하지 않는다. 일단 내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기력이 없으면 마음에 우울이 들 일이 많다. 그렇게 되면 관계 역시 병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고미숙은 건강한 신체란, 결단과 용기를 주관하는 간신(간장과 신장), 생각을 주관하는 비위(비장과 위장) 사이에 간극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해야한다는 것이다.


생각은 많은데 행동이 따라주지 못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 그만큼의 잉여가 몸에 쌓이게 된다. 그 잉여가 바로 번뇌와 질병을 낳는다. 지행합일 혹은 언행일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122p)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징후중에 가장 문제시될 만한 것은 우리가 몸은 적게 쓰고 머리만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다. 여기서 머리라 함은 어떤 학문을 생각한다는 의미보다는 잔꾀, 수를 쓰거나 망상에 빠져있음을 의미한다. 21세기를 휘감고 있는 숱한 이미지 속에 우리의 머리(생각)은 잠식되어 버린지 오래다. 우리는 이제 이미지로 사고하고, 이미지를 사랑하고, 이미지를 꿈꾼다. 쉽게 말해 우리가 꿈꾼다고 말하는 인기 직종의 모습들은 대게 광고에서 보일 법한 하나의 멋진 이미지일 공산이 크다. 실제로 겪어보지도 않고, 만들어진 이미지를 꿈꾸는 일이 얼마나 허다한가. 단순한 공상 뿐 아니라 때로는 사랑도 이미지로 할 때가 많다. 이를테면, 외모만 가지고 사랑에 빠지는 경우, 혹은 내가 만들어둔 이미지, 틀에 고정시켜 사랑을 하다가 거기에 맞지 않는다고 낙심하는 경우가 바로 이미지-사랑이 아닐까.


사랑 역시 건강하게 해야한다. 이미지가 아니라 신체로 맞붙는 사랑을 ‘겪어야’한다. 꺽정이와 친구들을 보면 그들은 연애고민이라는 것이 없다. 연애에서 오는 즉각적인 기쁨, 설렘, 슬픔 등이 있을 뿐이다.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가 만나 대결하니 오해가 생길 틈이 없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소위 쿨한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마음도 그렇지 않은 척 감추고, 튕기고, 밀고 당기고. 이것이 정녕 쿨한 관계인가? 꺽정이와 친구들의 사랑을 보니 이런 시원시원한(그야말로 cool) 관계 앞에서 함부로 쿨하다는 표현을 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신체로 맞붙는 사랑은 때로 칼부림을 부를 지언정 뒤끝은 없다. 배신자, 혹은 잘못한 사람에게는 그에 응당한 책임이 뒤따를 뿐, 보이지 않는 사랑의 상처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캐릭터는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 물론 꺽정이처럼 마구잡이로 들이대고 몸으로 사랑을 하는 방식이 지금 세대와 꼭 맞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위에서 언급했던, 솔직한 대화와 대면(!)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요즘의 사랑을 하는 우리들이 꼭 배워야 할 점이다.



 

6. 백수의 지상미션!


밥 벌어먹고 사는 일부터, 사랑하는 일까지 백수에 삶에 필요한 지혜를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이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백수가 해야할 일은? 지행합일! 앎을 실천하는 일 뿐이다. 사실, 말이 쉽지 행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 적어도 요즘 같은 시대에 청석골을 꾸릴만한 호탕한 백수 동지를 만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일단 나부터가 임꺽정의 배짱을 좀 갖춰야겠다. 내가 변신하면 그에 걸맞은 친구들을 만나고, 그에 걸맞은 세상과 접속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은 길 위에서 이
어진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삶은 결코 예상대로 뻔히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다. 확실하고 안전해서 불안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아직 젊을 때 아직 청년의 몸을 가지고 있을 때, 한번 불확실하고 불안전한데도 불안없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을 읽고 난 내게 주어진 지상미션이다! 어쩐지 백수 생활이 조금은 더 흥미진진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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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 6점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문학동네
무라카미 라디오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까치글방




최근에 작가 에세이에 관심이 많다. 특별히 그것만 찾아 읽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최근 빌린 책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작가 에세이 집이다. 작가별로 찾아읽었는데, 이게 나름 국가별 구분도 된다. 루쉰의 에세이와 미루야마, 무라카미 에세이를 읽었고,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유럽작가의 에세이다. 나름 특색있고 읽기도 쉽고, 소설 못지 않게 재미있다. 그 중 일본의 동시대 작가임에도 불구 상당히 다른 감상을 전해준 두 작가가 인상깊어 포스팅한다.

루쉰같은 경우, 역시 에세이집에서조차 특유의 깊은 문장의 맛이 넘쳐났다. 뿐만 아니라 사회와 연륜이 담긴 글은 도저히 차 안에서 읽어낼 수 없을 만큼 무게가 있었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당시 혼란스러운 중국의 시대상황으로 인한 루쉰의 분노가 표출되어 있는데, 지금 한국정치에 비견해도 다를 것 없는 느낌에 더욱 그의 글이 와 닿았다. 루쉰은 특히 청년에 관심이 많아 중국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저기 질타와 당부의 글이 한국에서 읽는 나의 어깨에까지 쿵쿵 닿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글을 쓰려면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무라카미 라디오]는 책 제목만큼이나 가뿐하게 읽을 수 있는 수필집이다. 어제까지 붙들고 있던 [소설가의 각오](제목부터가 다르지 않은가!)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라멜같이 말랑말랑한 사람이고, 미루야마는 박하사탕 혹은 단단한 (딱딱한) 알사탕같은 사람이다.

무라카미 글은 때론 달달하고 군데군데 웃음짓게 하고 (그릇을 깨뜨려놓고 "여보, 저 할머니가 염력으로 내 손바닥을 미끄럽게 했다구" 외치는 무라카미를 상상해보라) 그 가운데 잔잔한 삶에의 이해가 감동을 준다. 반면 미루야마는 대쪽같고 칼같은 사유와 문체가 독자의 의지를 불끈 솟게 만들고 자세를 곧추 세우게 한다. 하여 무라카미 글이 종종 '에이, 이게 뭐야'하고 킬킬댈만큼 시시껄렁한 글들이 끼어있고, 미루야마의 글은 '이사람 뭥미'싶게, 자신의 넘치는 자부심을 반복해서 읎조려, 자랑을 보통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굳이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고 어쩌구, 그러니까 내가 첫 소설이 당선이 된건데, 다른 소설들이 너무 시시껄렁하다는 둥 어쩌고) 호오가 너무 명확해서 자기 관심외의 것에 극단적인 모멸감을 보이기도 한다. 그에 반해 무라카미는 이래도 응응~, 저래도 응응~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무라카미에게 누군가 "위선자!"라고 욕한다. 무라카미 곰곰히 생각한다."내가? 내가? 음음음... 뭐 솔직히 말하면,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랄까~응응)


그렇다고 해도 이 두 사람이 모두 일본 사람이라는 것은 어쩐지 납득이 간다. 일본에는 이런 '응응형인류'와 '사무라이형인류' 두 종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까?(그러니까 무라카미와 미루야마는 이 두 종류의 인간들의 전형이랄까.) 또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이 서로를 좋아하거나 친할 거라고는 상상이 안된다. 뭐 그건,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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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 10점
한비야 지음/푸른숲


 


성공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놀라지 마시길. 국제구호개발 NGO의 일개팀장인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해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혹은 닮고 싶은 여성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는 사실! 2006년에는 어느 신문사가 사십대 이하 성인 남녀 약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톱 10’ 중 7위에 뽑혔고 2009년애는 이화여대에서 조사한 ‘가장 닯고 싶은 한국 여성 2위’에까지 올랐다. 이게 무슨 일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205P)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만약 내게 그런 설문의 기회가 있었더라면 나 역시 한비야에게 내 소중한 한 표를 덥석 던지지 않았을까? 한비야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나에게 처음으로 닮고 싶은 ‘성공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언니’다. 여기서 ‘성공’과 ‘언니’의 의미는 소위 말하는 뜻과는 조금 다르다. 한비야를 지칭할 때만큼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한비야 언니가 내게 알려준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간 여러 권의 여행서적, 에세이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한비야는 <그건, 사랑이었네>를 통해 조금은 더 내밀한 속내를 드러낸다. 좀더 솔직한 얘기, 좀더 마음 깊숙한 이야기들이 한비야 특유의 발랄 문체에 고스란히 담겨 따뜻한 에너지로 전해져온다. 이번 에세이집을 통해 나는 내가 왜 한비야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한비야가 알려준, 조금은 다른 ‘성공’의 모습 때문이다.

 

...내가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이루었을 때 우리 모두가 함께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준다는 점이다. 그들이 공공의 선을 이루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성공의 열매를 맺는다면 그 열매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210p)

 

성공이 단순히 돈이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 여럿 끼 있는 인물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비야 역시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매력을 높이 사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비야는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혼자만 재미를 보는 사람이 아니다.

 

한비야의 성공은 “나눔의 성공”이다. 그녀의 직업이 누군가를 ‘구호’한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한비야의 인생관을 살펴보면 그녀는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 비전을 두고 사는 사람이다. 있으면 듬뿍 나누고,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누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받는 사랑이 얼마나 큰지 한비야는 누누이 말한다.

 

대게의 성공 에세이가 그러하다. 얼마나 외롭게, 악착같이 노력해서 성공을 이뤘는지. 빛나는 성취를 위해 얼마나 고독한 희생을 치렀는지 얘기하며,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하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무의식중에 품고 있던 성공의 모습도 그러한 것이었다. 빛나지만 이면엔 혼자만 아는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있는. 하지만 한비야가 알려준 성공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을 수 있는 성공을 하라고 말한다. 내 성공이 남들에게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성공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성공은 절대로 목표가 ‘돈’이나 ‘명예’가 될 수 없다. (그보다 훨씬 원대한 비전이 될 게 분명하다!)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갖추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한비야는 내게 이런 삶의 자극도 준다. 게다가, 그렇게 내가 향해갈 목표점에 돈이나 명예만이 아닌,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을 품을 수 있도록 좋은 길(멋진 길!)을 안내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비야는 ‘성공한 여성’일 뿐만 아니라 내겐 ‘언니’다. (절로 ‘언니’란 호칭이 나온다!) 책 곳곳에서 그녀의 에너지와 따뜻한 위로가 읽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한비야가 내게 성공의 방법을 일러주는 방법도 따뜻하고 친절하다. 그녀는 우연도 아니고, 타고난 배경도 아닌 스스로 개척한 인생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천부적이라기보다는 온전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나도 이렇게 하는데 네가 왜 못해!’라며 응원해준다. 그녀의 책을 보면 결코, 자신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해서 잘 이뤄냈다는 얘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한비야는 책을 읽는 사람까지 끌어낸다. 마치 옆에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길을 택한 후 잔뜩 긴장한 채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지금 당신과 똑같은 처지이고 똑같은 마음이라고. 그러니 당신과 나 우리 둘이 각자의 새로운 문을 힘차게 두드리자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자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할 테니 당신도 나를 생각해보라고. 그래서 마침내 각자가 두드리던 문이 활짝 열리면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등 두드려주며 그동안 애썼다, 수고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자고. (298p)

 

<그건, 사랑이었네>속에 담겨있는 한비야의 성공, 기쁨 때론 우울, 추억을 접해보면 곳곳에서 그녀가 얼마나 삶을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도 이 점이었다. 만약 그녀가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거머쥐지 못했더라도, 그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더라도, 그녀는 ‘지금’이라는 이름의 삶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 역시 내가 그녀만큼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 학벌이 혹은 내 직업이 어떠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녀보다 내 삶을 덜 사랑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동시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된 셈이다.

 

한비야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남에게 추천할 책 목록도 만들고 싶고, 앞으로 살면서 꼭 해야할 일 목록도 짜보고 싶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혹은 자신 없었던 일들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제아무리 좋은 자기계발서적도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한 적은 없었다. 왜 그럴까?

 

한비야의 책은 내가 어떤 일을 ‘해야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고 나서 나 역시 한비야처럼 ‘하고 싶었다!’ 무엇을? 모두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성공을, 지금의 나의 삶을 끌어안고 예뻐해주고 한껏 사랑하는 일을! 지금 당장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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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10점
박민규 지음/예담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눈에 익은 그림인데 어딘가 낯섭니다. 당신의 책 표지에 걸린 이 그림은... 어린 공주도, 그림 속에 자화상도 아니고, 못생긴 시녀 한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고전풍의 제목과 잘 어울리면서 마음이 아련해지는게.. 게다가 장편소설이라니 당신의 예전 삼미슈퍼스타즈를 기억하고 있는 팬으로서 마음이 절로, 설레인건 저 뿐만이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펼친 첫 장. 사랑에 빠진 스무 살 커플의, 앞뒤 없는 애뜻한 이야기는 어쩐지 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스무살, 그리고 첫사랑이라. 이미 지나와버린 나이라서, 늘 꿈꿔왔지만 막상 스무 살이 되자 그 나이가 별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아버린 나이라서, 제게 스무살의 첫사랑 이야기는 마치 드라마처럼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감할 수 없었고... 심지어 허세스럽기까지 느껴졌다는... 솔직한 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사랑은 일생일대의 로망이기 때문에, 스무살이 넘은 나에게는 앞으로 일어나길 바라는 꿈같은 일인데... 훗날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확신은 차마 못하겠고... 이 둘은 누구길래 벌써 그런 사랑을 지금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자랑질이냐, 싶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블링블링 무비스타 아버지와 그의 곁에 있어서 더욱 남루한 색이 짙은 어머니. 그런 가정에서 당신은 외모에 대한 불신. 보이는 것 너머의 아름다움을 생각했습니다. 짧지 않은 당신의 과거 속에서 저는 그런 당신의 생각을 충분히 납득...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였기에,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볼품없는 얼굴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그 너머의 진실들을 가리는지 당신은 남보다 일찍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당신의 사랑이야기보다 훨씬 중요...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미인에게 첫눈에 반하듯 운명적으로 못생긴 여자에게 꽂혔다...고 했다면, 얼마나 이 이야기는 시시했을까요. 당신이 왜 남들과 달리 못생긴 여자에게 호감을 느꼈는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쁜 여자를 사랑하기 마련인데 당신은 왜 그러지 않았는지, 저는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해야만 이 이야기에 매료될 수 있으니까요. 하여 저는 이 이야기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이내 첫사랑에 빠지듯 당신의 사랑이야기에 설레기 시작했으며... 때론 안타까운 마음에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얼마 남지 않은 책장을 한 장 한 장 아쉽게 넘겨가며 읽었습니다. 네, 저는,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야기 속에 사랑이야기는 딱히 별 사건은 없지만... 대신 당신과 그녀의 섬세한 내면의 소리... 그리고 변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들이 사랑이라고, 둘이서 한 특별한 일들, 에피소드, 추억보다도, 함께 있을 때의 설렘과 고민들, 기다림, 변화... 그것들이 사랑이 될 수 있다고 당신은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요한이 쏟아내는 사랑과 세상에 대한 말들이 군데군데 제 마음 깊숙이 다가와서, 저는 몇 번이고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모지상주의 풍조에 비롯, 이미지의 노예가 된 요즘의 풍조에 대해서 같이 개탄하고... 그러면서 내 자신 역시 ‘요즘의 것’과 다름없음을 반성하고... 돌아보게 되고... 특히나 사랑에 있어서 얼마나 이미지를 숭배해왔던가.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걸었던 일이 얼마나 헛된가. 그것을 처음으로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이제껏 사회과학서적이나 자기계발서적 속에서 “외면의 것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 너머의 진실을 봐라. 이미지의 노예가 되지 말아라!”라는 명령을 들은 적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이렇게 마음에 와 닿아... 내 삶과 직결되는 반성을 촉구하고... 왜 그러지 말아야 하는지, 이미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구체적이고 또렷하게 가르쳐준 것은... 당신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것이 소설이 가진,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니었을까요... 단순히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과 이야기가 내 과거와 현재를 헤집으며 사랑과 외모(구체적으로 잘 생긴 것)에 대한 내 망상과 환상을 따끔히 꼬집어 주어... 저는 무척이나 개운하고 통쾌했습니다.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외롭다고... 그렇게 외치고 있는데도, 서로 보듬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상처를 내기 일쑤입니다. 반쪽의 가슴이 외로우면, 남은 반쪽에게 자신의 반쪽의 사랑을 부어, 하나를 이뤄내면 될 텐데...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면 되는데 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고 서로 외롭다고만 울부짖을까... 물론 그 사람들 속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저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그녀에게 불을 켜준 당신의 마음은, 무척이나 설레고 아름다웠습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떻게 생긴 사람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느냐가 아니고...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누리고 있는가, 얼마만큼의 행복과 얼마만큼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을의 쌀쌀한 고궁도 봄날의 것보다 아름다울 것이고, 김치찌개 냄새가 나는 어둔 골목도 가로등 반짝이는 로맨틱한 길이 될 수 있다는 것.


저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떠난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곁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변명은 있는 척, 아는 척하는 드라마에서나 떠들어대는 핑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것에 대해서만큼은, 조금 식상하단 느낌도 지울 수 없었지만... 공감했습니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간 당신이 변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떠날 것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지요. 그런 그녀의 진심이 담긴 편지는 그간 그녀가 얼마나 어두운 시간을 살아왔는지. 그녀가 선택할 수 없었던 외모 때문에, 고작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왔는지 들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신도 그랬겠지요. 그랬기에 그녀가 처음으로 그렇게 어렵게 꺼낸 그 말, “사랑합니다.”가 그렇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이겠지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이 이야기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에, 그와 그녀가 만나지 못하고 멀리 서로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는 물론 애뜻하고 아련하지만, 그녀가 과거에 받았을 고통을 회상하고, 마음 아파하는 당신의 말들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는데도 불구, 얼굴이 이쁘다는 이유만으로 반감을 갖았다는 이야기는, 게다가 이쁜 여자친구가 속물에다 진지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은, 뭐랄까. 못생긴 여자는 이렇다,는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편견이 아닐런지요. 물론 거기서 예쁘고 현명한 여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개되는 것도 황당하겠지만... 한쪽으로만 기운 목소리가 끊임없이 같은 것을 비판하고, 같은 것을 슬퍼하는 부분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이제 요한의 목소리가 되어, 세상물정비판 2부를 쏟아내고 있었거든요. 뒤로 갈수록 말투는 거세지고, 반감은 더욱 단단해져서.

 
그리고 난데없는 해피엔딩은, 이제껏 오래오래 끌어왔던 마음들이 와르르 균형을 잃고 쏟아지는 듯이... 아쉬웠다는 솔직한 소감도 덧붙입니다. 물론 그것이 왜 그렇게 난데없고 급작스러웠는지에 대해 뒷부분에서 다시 이야기하고 있지만. 반전과도 같은 writer's cut...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저는 그 부분을 읽고 한참 공허한 기분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참 좋았는데, 그런 세 사람의 우정이, 사랑이. 현실적인 결말과 아름다운 추억도 맘에 들었는데. 그 공허함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결말은, 참, 아름다웠는데 말입니다.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추억으로서 빛나는 것일까요? 지나야만 그 반짝거림을 알 수 있는, 스무살 같은 것일까요? 사랑은 아니, 아니에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는, 익히지 않아도 잘 살수도 있는 함수와 인수분해, 지수와 로그는 배우면서, 익히지 않으면 잘 모르는, 사랑하는 법, 이해하는 법 같은 건 배우지 않는 걸까요? 누구나 사랑을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데도 사랑에 대해 알고 깨닫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는 그렇게 소홀히 하는 것일까요? 왜 사람들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순위에 맞춰 정하는 걸까요? 그렇게 외로워하면서... 그렇게 고독해하면서 말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결국 그 모든 이유가 저에게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고, 저부터가 제 마음 앞에 걸쳐진 화려한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마치 늘 마시던 커피의 종류를 바꾸듯, 잘 먹던 아이스크림의 종류를 바꾸듯, 그렇게 쉽게 될 일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이상, 사랑을 하는 데에 있어, 생활이 아닌 ‘삶’을 사는데 있어 무엇이 더 중요한지 들은 이상... 저는 적어도 그 이전과 같은 사람은 이제... 아니겠지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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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 6점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궁리




H.H에게

 

이 이야기는, 미국에 있는 작가인 당신이 영국 고서점 마크스 직원 프랭크와 주고받은 편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소개글을 책표지에서 읽었어요. 편지 만으로 된 책이라, 어렴풋이 친구한테 소개받은 책이 이것이었나? 싶기도 하고, <유브갓메일>의 원작이 이것인가? 싶은 호기심에 책을 펼치게 되었답니다. 사실, 서점 직원하고 편지할 말이 얼마나 있겠어요? 대충 훑어보고 말 생각이었지만, 당신의 이력을 소개한 글이 결정적으로 제가 이 책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당신은 방송 대본과 희곡을 쓰는 작가다. 하지만 번번한 작품을 써내지 못해 딱히 기억될 만한 작품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서점직원 프랭크와 주고받은 편지를 공개해 출판했고, 이것이 흥행이 되어, 이제껏 그녀가 쓴 어떤 작품보다 유명세를 탔다. 영화, 연극 등으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실례지만, 제 얘기도 아닌데 마음이 씁쓸하고 슬퍼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녀가 쓴 어떤 작품보다, 프랭크와 보낸 편지가 유명세를 탔다-는 대목에서요.

 

서점과 편지라. 참으로 로맨틱한 로망이지요. 과연 서로 본 적도 없는 두 사람이 어떻게 인연을 이어나가는지 궁금했어요. 그것도 책 주문서를 통해서 말이죠. 맙소사. 제 생각에는 아마 H.H 당신의 책을 향한 끈질긴 구애와 서점 직원들을 향한 넉넉한 나눔, 아낌없는 선물이 큰 결실을 맺은 것 같아요. 물론 새로운 인연을 향해 거침없이 마음을 열어놓은 당신의 성품도 큰 역할을 했구요.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호의가 서로에게 감동과 사랑이 될 수 있다니. 읽는 저도 놀랐답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베푸는 애정 뿐 아니라, 서점 사람들이 당신을 향해 보내는 진심어린 사랑도 무척 애뜻한 것이었어요.

 

결국 당신은 마크스 서점에 친구가 잔뜩 생겼지요. 그곳에서 HH 당신 이름만 되면, 당신을 반겨주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 정도로요. 하지만, 당신이 결국 프랑크를 만나지 못한 것은 정말 유감이에요. 그래서 더 애뜻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H.H. 내 생각에는 말이에요. 프랭크가 비록 노라라는 아내가 있기는 했지만, 당신 편지를 쓰면서 사랑에 빠진 거 맞죠? (그것도 책 주문을 하면서!) 박식한 지식으로 조언을, 책에 대한 애정으로 꼼꼼한 답장을 건네는 프랭크는, 정말 호감 넘치는 분이었죠! 전, 글만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거든요. 당신, 글 쓸 때 분명 엄청 설레고 두근거렸을거에요. 프랭크가 유부남인게 끝끝내 유감이었어요. 물론 아내 노라도 멋진 여성일 것 같았지만요.

 

이제는 더 이상 없을 이야기네요. 더 이상 보기조차 힘든 책 주문장을 상상하니 그 당시의 정겨운 풍경들이 부러워요. 지금은 인터넷 서점에서 클릭 한번이면 책들이 오니까요. 글만으로도 친구를 사귀고, 사랑에 빠지는 아직까지 유효한 당신들의 낭만이, 부러웠습니다.

 

당신의 수많은 자상한 선물에 과연 보답할 길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영국 여행을 결심하신다면, 머물고 싶은 한 언제까지 쓰실 수 있는 침대가 오크필드 코트 37호에 있다는 것 뿐입니다 -프랭크 (76p)



(P.s. 프랭크의 저 답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까닭은, 나 역시 저런 편지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MI CASA ES SU CASA! 먼 곳에 있는 소중한 친구가 늘 이렇게 말해준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때 울컥한 마음이 기억나, 저 부분이 제일 좋았다! 먼 곳에 내 집이 있다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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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1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태동출판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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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열혈 독자를 자부함에도 불구, 그의 대표작이라는 <백야행>은 쉽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 보고싶을 땐 책을 구하지 못했고, 한번은 구했다가 끝까지 못읽고? 덮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영화<백야행> 소식이 들리고, 주연이 한석규-고수-손예진 라인이라니, (너무 맘에 들잖아!) 어떤 이야기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백야행>을 다시 열었다.


19년전의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사사가키 쥰조라는 형사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중반까지도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도록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주인공이 서서히 물밑에서 떠오르는 기분이랄까. 많은 사람의 목소리와 시점에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독자는 그 모든 이야기가 가리하라 료지 혹은 니시모토 유키오와 관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때의 전율이라니. 그 두 사람은 19년의 사건과 관계된 인물 둘이다. 료지는 19년전 살해된 기리하라 요스케의 아들이고, 유키오는 요스케의 정부로 추측되었던 후미요의 딸이다.

이야기보다 나를 매료시킨 것은, 이야기의 구성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식이다. A와 B가 관계된 사건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A가 B를 이야기해서 그 관계성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A가 C를 언급하고, C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데에 B가 연류된 방식이다. 맙소사. 마치 막다른 길에서 예상치못한 적수를 만난 듯한 기분! 이야기 골목골목마다 놀라운 인물과 사건, 단서들이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일본어 이름이 많이 나와 헷갈리지만... 뭐 그정도 쯤은 감수할 수 있다!)


히가시노는 원래 구성을 잘 이용하는 작가다. (<악의>나 <회랑정 살인사건>에서의 충격을 떠올려보라!) 그는 구성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백야행>은 위에서 언급한 구성이, 주인공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마치 태양처럼 고고하게 빛나(보이)는 여자 유키오. 어두운 곳에서 그 태양 주변을 늘 맴도는 검은 위성 료지. 이 두 사람은 소설 속에서 단 한번도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종일관 이어져있다. 그것은 때론 인물로, 때론 사건이나 소품(RK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야기 구성 역시 두 사람의 관계를 직접 언급하는 거의 없지만, 독자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짙어지는 두 사람의 인연의 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한 러브 스토리.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
이 책의 타이틀이다. 두 사람은 만나지도 않는데, 이게 어떻게 러브 스토리냐며 투덜거렸지만,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남는 그 긴 여운이란. 어떻게 이런 사랑이 있을까 싶은 안타까움. 이해할 수 없을것만 같지만 그럴 수는 있을 것 같은 마음.
 

19년 전, 한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처받고 아프게 했나. (이건 결코 소설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료지와 유키오의 삶도 안쓰러웠지만, 그 둘에게서 뻗어나간 여러 인연장의 인물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료지와 유키오 주변의 좋은 동료들. 사랑들. 좀 더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었던 그 사람들에게 료지와 유키오는 그저 상처를 주고 받는 것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또 안타까웠다.


히가시노는 공대 출신 아니랄까봐 현란한 컴퓨터 지식 및 공학적 지식을 마음껏 뽐낸다. 그런 천재성을 매번 히가시노의 소설 속 악인들이 물려받는다. 그들은 대게 공학,수학 천재들이다. (용의자 X의 헌신, 레몬...) 그래서 늘, 저 똑똑한 머리를 좋은데 썼으면 쯧쯧, 싶게 만드는데 이 작품에서 료지 역시. 하지만 그들 앞에 놓인 비극을 상상하면 (비록 소설이지만)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먹먹해진다. 


P.S 책을 읽고 드라마도 챙겨보고 싶었는데, 영상으로 만나는 <백야행>의 후폭풍이 두려워(ㄷㄷㄷ) 감히 도전을 못하겠다. 어둠 속을 걷는 고수와 손예진. 그리고 그들을 추적하는 한석규! 어서 만나보고 싶다. 아마 이야기는 중간이 생략되고 처음과 끝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거기다가 인디 영화계의 히어로(!) 임지규군이 (역시) 도모히코로 출연한다는 소식! 미성숙된 소년, 용기는 없지만, 의리는 있는 도모히코! 정말 적역이다. 다카미야 마코토 역의 박성웅 배우도 맘에 든다.  부디 <백야행>의 아득하고 먹먹한 매력을 잘 살린 영화를 만날 수 있길. 


(출처: 아시아경제신문/티클로즈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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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10점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이루





가난뱅이의 역습 -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이루

마츠모토 형님이 말씀하신다!
"가난해서 못한다고? 그럼 공짜로 살아!"
기똥차게 재미있는 반란을 일으키며 공짜로 살아가는 법이라, 제목부터 기똥차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방법은 이제 스스로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대는 바뀌었고, 사회구조는 갈수록 덜 유쾌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속은척 타협하고 살던대로 살다가는, 생명연장의 꿈은 이룰수 있을지 몰라도, 신나게 살기는 쉽지 않다.




사실, 가난뱅이 기술이랍시고, '집 얻는 법, 밥값절약, 옷구하기' 등의 방법은 무척 궁상맞은데가 있다. 때론 누군가가 나의 노숙생활로 불편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설정에 맞춰진 경제관념 등이라 조금은 비현실적이기도, 상당히 엉뚱하기도 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마츠모토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자치적인 새로운 공동체를 스스로 조직하라는 거다. 가난뱅이들은 특히나 혼자살 수 없다!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타야 가장 돈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자유로운 미디어를 만들 수 있고, 거리를 휩쓰는 무적의 대작전을 펼칠 수 있는 거지!


자. 이제 우리 모여서, 가난뱅이 회의를 하자.
생각만해도 멋진 일들을 꾸준히 해온 마츠모토! 절로 형님소리가 난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이만큼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까?

반란이란, 축제란 어디 멀리 가서 참여하고 오는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해내는 것이라고 그가 말한다. 함께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동료들을 찾는게 중요하다. 그리고 놀더라도 이렇게 더 넓은 곳으로 접속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그 어디라도 신나는 놀이터가 될 것이다.

비록 흉내는 내지 못할 지언정, "나도 뭔가 하고 싶은데요!" 그 자세로, 지금 여기서부터, 우리 함께 역습을 꿈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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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기 위해서

꿈. 어쩌면 꿈이라는 말은 조금 거창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열망, 바람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외딴 방 하나를 가지고 있다. 외딴방은 잠시, 꿈꾸는 동안 머무는 곳이다. 때로는 외딴방에 있기 때문에 꿈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 사진사가 되고 싶었던 외사촌. 외딴방 밖에서 보이는 그들은 그저 모여 있는 익명의 무리지만, 외딴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그들 개인은 우주를 품고 있는 숭고한 존재들이다. 꿈을 안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숭고하기 때문이다.

그가 소설을 써 보는게 어떻겠냐는 말 대신 시를 써보는게 어떻겠느냐고 했으면, 나는 시인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랬었다. 나는 꿈이 필요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 큰 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 굴뚝의 연기도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시골에서, 이제껏 살아온 방식으로 그렇게 어른이 될 수도 있었다. 외딴방에 살게 되는 인물들은 기존에 머물던 세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 속으로 뛰어들고자 외딴방에 기거하게 된다. 새로운 삶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계와 새로운 세계 사이에 놓인 그 외딴방을 거쳐야만 한다.

나 역시 대학시절, 머물렀던 나의 작은방, 그 외딴방이 떠올랐다. 어제나 오늘보다는 내일을 생각했을 때야 겨우 잠들곤 했던 곳. 종이위에 연필로 긁적이고, 몸을 긁적이고, 그 좁은 방에서 흘러가는 내 시간을 긁적이던 지난날들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잠잠히 떠올랐다.


다른 삶을 꿈꾸는 자들의 외딴방
집과 학교의 거리가 멀었던 나는 학교 앞 고시원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던 나, 어떻게든 달라지고 싶었던 나...... 하지만 할 줄 아는 것은 별로 없었던 나. 그런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나 스스로에게 좀더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일이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내 통장을 털어서까지 고집을 피워 집밖으로 나온 것은 그만큼 그때의 나는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에 뛰어들기 직전의 일 년이었고, 공부할 수 있는 일 년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열여섯의...... 그 소녀처럼.

정말 좁은 방, 겨우 두 발을 책장 서랍에 넣어야 바로 누울 수 있었던 나의 방. <외딴방>속 작가의 시간과 공간과 나의 외딴방은 물론 너무도 다르겠지만, 열망으로 가득 찬, 지금보다 어린 내가 머물렀던 좁은 방을 추억했을 때 환기되는 감상은, 저자의 외딴방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리라. 그곳에 늘 열망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던 나, 외딴방에 갇혀 있는 게 싫어 늦도록 방밖에서 헤매던 나, 하루빨리 더 떳떳한 모습으로 외딴방을 벗어나고자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스물 네 살의 내가, 거기 있었다.

<외딴방>을 열자, 그때 그 방의 문, 301호실의 좁은 고시원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가장 마음에 들고 내 사정에 꼭 맞는 외딴방을 구하러 다니던 기억, 그 외딴방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설렘. 첫날, 한 달, 백일을 달력 위에 표시하며 이 공간속에서 불어나는 시간을 고스란히 느끼던 시간들. 잊고 있던 기억의 포문이 열렸다. 그랬기에 열여섯의, 그 소녀가 머물렀던 외딴방, 느꼈던 외딴방이 내게 촉각적으로, 후각적으로,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열망이 끌어 넘치는 좁은 방
두 소녀의 열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곳, 좁은 외딴방의 후텁지근한 열기가 훅, 느껴졌다. 지금이 여름이기 때문일까. 연탄불의 온기로 뎁혀지고 있는 방, 옴짝거릴 때마다 서로의 팔을 스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누워있는 외사촌, 오빠 둘, 그리고 나. 그 모습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린다.

돌아누운 등, 웅크리고 있는 작은 몸, 그들이 누운 맨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제각각의 열망들이 천장까지 닿았으리라. 누가 뒤만 봐주면, 정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을 큰오빠. 맏이란 이유로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천형을 어깨에 맨 큰오빠. 그를 보며, 왜 난 그의 누이가 아니었을까 미안한 마음을 갖는 나, 작가를 꿈꾸는 나, 그저 그렇게 풀어냄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 나, 어서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외사촌, 자신의 운명도 버거운데 시대의 운명과 맞서고 있는 작은오빠. 인생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선뜻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그들의 밤이, 느껴진다. 마음이 금세, 눅눅해진다.

외딴방은 과거, 기억 속에 있다. 그 기억, 내 마음 속에 저 스스로 외딴방이 되어 머무는 상처 같은 기억이다. 소설 속 신 작가에게 외딴방은 그러한 존재다. 외딴방에 창을 뚫고 신 작가는 들여다본다. 그가 쓴 글이 외딴방에 문을 낸다. 사람들이 두드린다. 옛 친구 하계숙이, 큰오빠가, 잡지사의 기자들이. 결국 이 소설은 신 작가가 외딴방에 달린 문을 여는 과정이다.    

외딴방으로 걸어 들어간 건 열여섯이었고, 그곳에서 뛰어나온 건 열아홉이었다.  
그 사 년의 삶과 나는 좀처럼 화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그것들을 인정하는 것.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억은 잊혀짐으로 도피할 수 있다. 상처도 시간으로 덮고 모른 척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아마 내 발등을 찍은 쇠스랑처럼, 우물 속에 던져놓은 쇠스랑처럼 시도 때도 없이 오늘의 나를 불러낼 것이다. 그것을 건져내지 않으면, 불현 듯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몇 번이나 가만히 멈춰 서서 마음의 진동을 견뎌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함께 울어줄 수 있게 될지도
나는 본다. 얼마나 소소한 것들이 한 소녀의 시간에 흔적을 남겼는지. 소녀 신경숙의 세계와 부딪치는 역사적 사건들, 음악과 영화, 사람들. 말들. 그것들이 소녀 신경숙이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순간에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작은 멍이 들게 한다. 그녀가 겨우 입 밖으로 뱉어낸 희재 언니와의 일. 열여섯의 소녀 자신이 아니고서는 결코 짐작하지 못할 그 슬픔과 상처. 이해할 수도 대처할 수도 없었던 소녀를 본다.

신경숙 특유의 감수성 넘치는 문장이 내 소매를, 옷깃을 서서히 적셔간다. 한쪽 팔꿈치를 적시는가 싶더니 어느새 깊숙한 마음까지 젖어간다. 열여섯의 신경숙, 그녀의 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의 이야기를 읽는 듯 함께 얕은 한숨을 내뱉고, 노조 이웃들의 고초에는 함께 입술을 앙다물기도 한다.

<외딴방>은 열여섯의 소녀의 상처를 보고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의 상처를 위로받는 책이다. 동시에 이웃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짐작해보고 함께 아파하고 위로해보는, 그런 이야기다. 아직도 이 세계 속에는 외딴방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에. 우리는 누구나 물리적인, 심리적인 외딴방을 갖고 있기에,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누구나 우리는, 열여섯의 나,가 된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결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나의 슬픔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소녀를 통해, 누군가 우리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슬픔을 겪기도 한다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는 이제 이웃의 그 슬픔을 공감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마땅치 않은 위로의 말을 해주기보다는 함께 울어줄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다. 
  

외딴방에 작은 온기를 느끼다
<외딴방>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다. 우리는 느낄 것이다. 처음 내 외딴방을 발견했을 때, 이 책을 처음 봤을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조금은 달라져있다는 것을. 내 마음이 가 닿을 수 있는 범위가 조금은 더 넓고 깊어져있음을. 그리고 한때 열망이 들끓던 나의 차가운 외딴방에 작은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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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복판에서 길을 묻다

역사학자 한홍구는 저서에서 지금 대한민국에 듫끓는 얽히고 섥힌 문제들을 몇가지 큰 주제로 정리하고 있다. 뉴라이트와 건국절논란, 간첩논란, 공사의 지대가 되어버린 강산, 민영화문제, 정국을 뒤흔드는 괴담, 사교육에서 지난 촛불의 의미까지- 한홍구는 꼼꼼하게 그리고 지금의 사회를 어지럽히는 문제를 족집게처럼 풀어, 특유의 시원시원하고 명쾌한 어투로 강의를 펼친다. 

 한홍구가 꼽은 대한민국의 문제들은 사실, 이미 여러번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오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가 열거하고 있는 몇가지 주제들은 한국의 근현대사와 긴밀한 연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단순히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는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 고질병이 어디서 기원하였는가, 근현대사적 지식과 역사를 통해 심도있는 분석 및 대안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현대사를 관통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때 해야할 일을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데에서 기원하고 있다. 한홍구가 전작에 걸쳐 가장 목소리높여 꼽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지난 과거에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한 점이다. 현재 사회를 뚜렷히 나누고 있는 (극단적인) 진보/보수의 문제도 여기서부터 기원한다.

어느 나라나 진보와 보수가 있기 마련이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 청산되어야 할 친일파들이 친미극우로 달라붙으면서, 거기서 대통령을 비롯 정치적 실세가 이어져오면서 사상적 대립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친일파 청산 실패와 더불어 한 궤를 이루고 있는 문제는 남북이 갈라지고, 이때까지 분단된 정국으로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적 현실이다. 진보주의자가 좌빨, 빨갱이라는 언어에 포섭되어 그야말로 보수/진보의 개념은 자의적으로 해석되기에 이른다. 치우친 언사를 자랑하면서도, 아직도 자신이 중도 혹은 진보적이라고 착각하는 매체나 인사들의 기원 역시 이쯤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친일파들이 잡게 된 전쟁 이후의 한국정치는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그들의 안간힘과 순전히 개인적 이익만을 위한 정치적 행보로 한국사회 고질병을 유발하기에 이른다. 진보쪽 인사들을 껏하면 "너 빨갱이지?"식으로 몰아붙여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처단하고, 강남 땅을 그때부터 일구기 시작했으며, 헌법은 콧방귀로 날리고 간첩 등을 운운하며 괴담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잠시 생각해보자. 위 단락은 전쟁 초기 친일파들의 정치행보를 요약한 것인데, 어쩐지 쓰면서도 낯설지 않는 정국이다. 가끔씩 잊혀질만하면 등장하는 (의심스러운) 간첩소식, 무턱대고 DDOS의 배후를 북한으로 짚어버리는 난감한 정부, 남아나지 않을정도로 토목공사질을 일삼는 현정국, 쉴새없이 교체되고 일렁이는 사회 괴담까지- 올해들어 참 많이 들은 관용구(?), 역사후퇴의 증거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게 되는 안타까운 순간이다.  

민주화정부라고 불렸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역시' 다른 정권과 마찬가지로 불명예스러운 일, 안타까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부가 의의가 있는 것은, 적어도 이제까지 한국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이 민주적으로 해결, 발전되는 방향으로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과거청산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인혁당사건이 무죄로 판명되었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나름의 노력으로 그동안의 정국에 비해 한걸음 나아갔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헌데 그 모든 것들이 다시 한걸음 물러섰다. 인권위원장은 사퇴하기에 이르렀고, 정권 교체후 뉴스에서 과거청산위 소식이나, 인권위 등의 (좋은의미의) 소식은 들은 바가 없다. 게다가 건국절 논란으로 지금의 헌법을 완전히 부정하려는 시도까지 서슴치 않는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한 순간에 모든 것이 그때와 같아지거나 더한 상태다.   

이 책에는 우리가 그저 문제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실제론 어떤 모양이고 그 심각성은 얼마나 큰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곳곳에 놀랍고 어처구니 없는 일 투성이지만, 여기서 감탄만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한홍구는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어찌되었건 정권은 다시 바뀌게 되어있다. 우리가 현재 한국사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우리의 할 일을 알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얘기해도 얘기해도 들어주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가 괴담까지 이르는 현 상황을 정부가 하루빨리 인식하고 부디 자만을 내려놓고 겸손해져야하는 것이 첫째라지만, 우리가 그것을 지켜만 볼 일이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꾸기 위해서는 분명 국민된 우리에게도 할 일이 있다. 이 책이 그 모색할 동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의미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알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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