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가 어땠느냐는 물음에 나는 연신 “무서웠다”만 연발하고 있다. 엄마 얘기를 보고 무서웠다니. 엽기적인, 괴상한 캐릭터도 아닌, 국민엄마위상을 지닌 배우 김혜자를 보고 무서웠다니, 사뭇 의아할 수도 있겠다. 그 무서움(‘무서움’이 두려움보다 원초적이고도 감각적인 표현인 듯 하다.)은 박찬욱 영화를 볼 때의 무서움과 또 다르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의 두려움이 다른 지점에 있는 것처럼. 박찬욱의 <박쥐>를 보는 내내, 감독이 지닌 악동적 에너지가 분출되는 것을 느꼈다. <마더>의 에너지는 심연 속으로 깊숙히 파고든다. 현실 속에서 운없이 마주칠법한 장면들이 주는 불쾌함. 미심쩍음이 봉준호가 만들어내는 두려움의 원천이다. 괴물보다 뱀파이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니까.
모자란 아들 도준. 아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며 돌보는 엄마 혜자. 어느날 도준이 살인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다. 도준과의 관계에서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엄마이지만, 사회 속에서 엄마는 그저 힘없고 약한 여자일 뿐이다. 약자의 위기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결국, 혜자는 스스로 범인을 찾아나선다.
혜자는 도준에게 그저 헌신적인 존재다. 영화는 일상적으로 갖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부터 출발한다. 도준이 노상방뇨를 하는 모습까지 지켜보는 혜자는, 도준의 모든 것을 끌어안고자 한다.
혹자는 이 모든 이야기가 아들의 복수라고도 한다. 모든 것이 도준의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오싹한 얘기지만, 캐릭터를 보았을 때, 도준이 그토록 치밀한 사람은 아니다. 도준은 바보스러운, 순진무구함을 가지고 있다. 가끔 너무나 새하얀 색이 섬뜩함을 주는 것처럼, 도준이 지닌 순진무구함은 의도치 않는 섬뜩함을 지니고 있다. 순진함이 절대악으로 돌아서는 충동적인 순간은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도준은 치밀하고 계산적이라기보다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다. 버스정류장에서도 스스럼없이 볼일을 보고, 자신을 ‘바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덤벼든다. 이렇게 원시적인 동물 같은 ‘새끼’를 품어내기 위해서는 어미 역시 원시의 세계로 뛰어들 수 밖에 없다.
도준의 충격적이고도 충동적인 행위 뒤에는 엄마가 있었다. ‘바보라고 무시하면 가만두지 마’ 엄마가 도준을 지키고자 가르친 습관이 결국 도준과 엄마의 사슬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나면, 과연 엄마가 도준을 지켜낸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엄마의 행위는 모두 도준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그것은 도준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했고, 그가 저지른 파멸의 행위의 단초가 되었다.
영화에서 엄마와 아들은 사회적인 관계 뿐 아니라, 그저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도 그려진다. 때때로 혜자의 헌신은, 관계적인 의무처럼 느껴진다. 가장 가깝고 가장 아끼는 사이,가 모자관계의 일반적인 통념이고 그들은 그것을 지켜내고자 하지만, 결국 서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도 그들이다. 게다가 그 둘은 사실 그닥 서로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도 않다. 엄마의 맹목적인 보호는 그 둘의 관계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균열을 만들어낸다.
점점 더 파괴되고 상처나는 두 관계가 명백히 눈에 보이면서도, ‘모자관계’라는, 그 둘을 구속하는 통념과 의미 속에서 그들은 마치 못 본 척 끌어안고 상처내기를 반복한다. 그 관계의 징글징글함을 명민하게 포착해낸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이후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감독의 말로는 그 별명에 ‘갇혀있다’고 말한바 있다. 자신은 그다지 디테일에 집착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마더>에서도 곳곳에 봉테일의 면모가 드러난다. 여기서 그 면모란, 단순히 병적인 꼼꼼함을 이르기보다는 상황과 환경에 대해 굉장히 감각적이라는 거다. 이를테면 경찰서에 처음 들어오는 혜자가 품에 한 가득 박카스를 들고 와 일일이 형사들에게 나눠주는 장면이라든지, 횟집에서 변호사에게 아부를 하는 혜자의 대화 등 아주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핵심을 포착해 뒤틀거나 낯설게하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 일상에 관심이 많고, 삶에 남다른 센스를 지니고 있는 봉테일 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김혜자의 연기는, 그것이 연기를 넘어 그녀가 마치 원래 그런 듯한 섬뜩함을 보여준다. 감독과 배우가 캐릭터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었을 때만 가능한 장면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황영희, 신새벽등 연극배우들이 무게감 있는 조연으로 등장해, 낯선 느낌과 묵직한 연기력을 동시에 선보여 더욱 영화적 완성도를 높인다.
이 영화의 에너지는 하강한다. 그것이 어디로 향해있든, 그 에너지는 역동적이고, 무척,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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