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바르셀로나~  

 흥겨운 음악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마치 책을 펼치듯 나레이터가 나와 주인공 소개를 한다.


"비키와 크리스니나 둘은 대학시절부터 단짝이었고 기호가 같았으며 의견도 대게 일치했다.그러나 사랑문제에서는 어느 한구석 비슷한 곳이 없었다."

언제나 수다스럽고도 재치넘치는 영화를 선보이는 우디엘런의 흥미로운 영화가 개봉했다. 비키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이해할 수 없는 제목으로 번역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귀엽고도 엉뚱한 주인공들을 잘 살펴보면 웃음이 베시시 터져나오다가도 어쩐지 몰입된다. 공감된다. 어쩐지 나같기도 하고, 이런 점은 나 닮기도 하고…둘다 나네?!





친절한 나레이터의 목소리를 빌려 인물을 분석해보자.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 사람인지 살펴보자.

"비키에게는 사랑의 고민이나 쟁취욕 같은 건 없었다.
굳건한 현실주의자였다. 남자에게 요구하는 건 진지함과 안정성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전혀 다른 사랑을 기대했다.
깊은 열정에 따르는 고통을 지그시 받아들였으며, 위태로울 지경까지 그 감정을 밀고 나갔다.그런 고투 속에서 무엇을 얻었냐고 물으면,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다 
뭘 바라고 한 일이 아니기에. 그것이 비키가 가장 우선시 하는 점이었다."

사랑에 관한 그 둘의 태도는 분명히 다르다. 이것은 그녀들의 삶의 태도와 비슷하다. 삶에 안정성을 추구하는 유형. 언제나 계획한 것이 그대로 이뤄져야 만족감을 느끼고, 자신과 주변에게 성실한 타입이 바로
비키다.

반면에 크리스티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동감을 가진 여자다. 때론 그 생동감이 지나쳐 위험한 모험에 전부를 걸게 하기도 한다. 늘 뜨겁고 약동하는 시간을 소유하지만, 안정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안정은 곧 따분한 감정을 일으키고, 그것은 그녀가 참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험과 방황은 크리스티나에게 단짝친구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두 친구에게 열정적이고도 괴팍한 화가 후안 안토니오가 나타난다. 이 둘은 그에 의해 묘한 감정의 관계로 엮이게 되는데 그 방식도 큰 차이가 있다. 계획하지 못한 일에 닥치자, 비키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우선 몸을 사린다. 하지만 혹시나가 역시나. 예상치못한 문제가 생기자 그야말로 혼란에 빠진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럴수록 문제는 점점 진지하게 커져만 간다. 비키는 되돌려 고칠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고, 괴로워한다.




크리스티나는 어떤가. 새로운 환경에 정면으로 맞부딪친다. 같은 일이 크리스티나에겐 문제가 아닌 즐거움이 된다. 그녀는 예측하지 못한 일까지 일상으로 끌어안는다. 언제나 변화와 모험을 갈망했던 크리스티나는, 그런 상황을 꿈꾸기만 했지 스스로 만들어 낼 줄을 몰랐다. 늘 사건을 만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후안 안토니오는 크리스티나에게 연인이자 갈망의 대상이다. 하나의 사건에 고여있는 비키와 달리, 크리스티나에게는 문제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움직인다. 결국 후안 안토니오의 전 부인 마리아 엘레나가 이르러 삼각관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마리아 엘레나! 그녀의 기질 역시 흥미롭다. 그녀는 심한 조울증을 갖고 있는 전형적인 예술가 스타일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들의 기질이 상황을 휩쓸어버린다. 결코 짐작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혼란 속에서 홀로 고요한 안정을 발견하기도 하고, 안정 속에서 폭풍 같은 감정의 고요를 일으키기도 한다.  





후안 안토니오, 마리아 엘레나, 그리고 크리스티나! 제멋대로 살아왔고 살아가는 세 사람은 서로에게서 공통점을 찾는다. 새로움에 대한 집착, 모험에 대한 갈망 등은 그들에게 있는 결핍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들은 세 조각난 톱니바퀴가 맞춰지듯 서로의 관계 속에서 결핍된 것을 찾아낸다. 그리고 여타 영화 속에서 쉽게 마주치기 어려웠던 흥미로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그들의 캐릭터 자체가 흥미롭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균형적이어서 오히려 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이 관계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결국 또다른 결핍에 이끌려 관계의 삼각형을 깨고 부순다. 그리고 그래온 것처럼, 그들다운 제멋대로의 삶을 지속해간다.




현실주의적이고, 성실한 타입의 비키, 그녀에게 모험은 머나먼 하나의 이상과 다름없다. 크리스티나는 변화와 모험을 갈망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삶의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해 방황한다. 후안 안토니오도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보이나 알고보면 아내 마리아 엘레나의 세계 아래서 영향을 받고 있는 존재다.  

이들 중 가장 자유롭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예술가 마리아 엘레나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어떤 억압과 욕망도 참아내지 않고 분출해버린다. 미술로서 분출하는 능력도 있고, 방법도 알고 있다. 그럼 마리아 엘레나 만이 행복한가? 과연 그런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 남편을 향해 총을 겨누고, 소리를 지르고, 자살 시도를 하는 그녀의 삶은 정녕 자유롭고 행복한가? 그것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비키의 현실순응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면모, 크리스티나의 열정과 갈망, 이것은 내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잘 들여다보자.
우리는 마리아 엘레나 같은 존재-자유로운 자-를 갈망하며 비키처럼 고민하고, 크리스티나처럼 방황하지 않는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보라. 내 안에 있던 비키와 크리스티나를 마주해보자. 아닌 척 모른 척해도 결국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남몰래 키득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Posted by 프로듀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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