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책 고미숙의 <임꺽정, 길위에서 펼치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의 리뷰임에 동시에, 2009년 8월, 9월 수유+너머에서 곰쑥쌤과 백수동지들과 공부하면서 배우고 생각했던 시간을 총!정리해놓은 글이기도 하다. 뭐, 쓰고 나니 그렇게 되었다. 고로, 뭘 보고 배웠는지 궁금하시다면 스크롤의 압박을 이겨보시라, 이 말이다***

  






 

1. 백수(白手), 새로운 길을 열다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나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모두가 당연시 따르는 ‘학교-취직-결혼’의 운동벡터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신입사원이었다. 대학 새내기 때만해도 내가 선택한 전공공부를 하며 ‘나만의 길’을 개척하겠노라고 기세등등한 나였는데! 지금의 나는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분야 쪽에서 직장을 갖고 명함을 갖고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심하는 그런 사회 초년생이 되어있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열심히만 하면 될까? 열심히 출근하고, 열심히 시키는 일 하고, 퇴근하기 직전까지 열심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승진을 할테고, 그 다음 단계의 직원이 되겠지. 내가 원하는 돈을 월급으로 받으려면 한 십년쯤 일하면 될까? 그때쯤에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으려나? 이런 상상을 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앞날이 너무나 명확하고 뚜렷하고 생생했다. 아마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면 그렇게 되리라. 어째서 이렇게 뚜렷한 미래가 두려움으로 다가올까! 분명 두려움이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내가 나 자신의 이름을 잃고, 그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 혹은 무명의 직장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얼른 이 고리를 끊고 이 컨베이어 시스템처럼 굴러가는 인생의 행로에서 탈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랬다. ‘백수’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참 쉬웠다.


내가 선택한 백수는 직장을 잃은 상태가 아니라, 백수라는 이름으로 변신하여 다른 삶의 방향을 모색코자 한 것이었다. 이런 나의 심오한(?) 계획을 알 리 없는 지인들은 으레 나를 그저 아홉시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19년만에 최악, 청년실업 대란’의 일개 병정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대수냐. 이제부터 정신만 바짝 차리면 상상도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말이다!

 

2. 다른 길, 임꺽정을 만나다!



하지만 백수(白手)를 꾸려가는 일은 쉽지많은 않았다. 일단 백수를 선포하고 나니, 나는 원뜻 그대로 흰 손, 즉 빈 손 일 뿐이었다. 과연 이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본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교에서 못다한 진짜 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껏 늘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돈 벌 궁리만 하다보니((그 마저도 결국 궁리해내지 못했지만), 이런 낯선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가 않았다. 도움을 줄 친구도 선배도 찾기 어려웠다.



이런 내게, 『임꺽정』은 그야말로 내 삶의 문제를 대면하고 있는 텍스트였다. 그야말로 배움과 삶이 접속될 수 있는 기회였다. 내 백수생활과 그들의 생활을 비교해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이지 않을까! 삶에의 질문에 답을 품고 있는 책이야말로 진짜 고전이 아닐까! 이렇게 절실한 책이니, 한 문장문장이 내게 지도처럼 보이고, 단어단어가 암호처럼 자극이 되었다. 호적수를 만난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책장을 넘겨갔다. 책 속에 난 길을 따라, 2009년 지금의 백수가 유쾌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백수의 고민이 무엇인가?


아니, 단도직입적으로 나의 고민이 무엇인가 살펴보자. 이제, 어떻게 돈을 벌고 먹고 살 것인가? 나만의 길, 나만의 재주를 어떻게 발견하고 갈고닦을 것인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고 이어나갈 것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있는 질문이리라. 저자 고미숙은 이러한 청년들의 고민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이에 걸맞게 책 목차를 꾸려놓았다. 경제-공부-우정-사랑! 친구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어도 숱한 고민들이 대부분 저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과연 고미숙이 임꺽정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다른 길은 무엇일까.

 

3. 배움이 인생을 바꾼다!


 
저자 고미숙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배움, 앎이다. 공부는 그야말로 존재를 변신시켜줄 수 있는 ‘비법?게 공부의 어감은 그야말로 지리멸렬하고 진부하겠지니다. 나를 성장시키는 공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요한 배움이 진짜 공부가 되는 것이다.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존재변신을 꾀할 수 있는 공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그 방면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공부 등등.


신분이 나뉘어 있고, 정규교육은 받아볼 기회 없었던 임꺽정과 친구들에게는 그저 놀이 연마, 기술 연마가 공부가 되었다. 혹은 앞길을 열어갈 수 있는 사주 명리학. 도학을 통해 운명처럼 놓여진 자기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이 달인이 되어 간다. 하루 종일 그것만 집중하고 반복하기 저절로 달인이 될 수 밖에. 더군다나 달인이 되는 데의 핵심은 무목적이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 취직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그냥 하는 공부, 재미가 동해서 하는 공부래야 내 흥(興 )으로 공부해나갈 수 있다. 나는 이런 공부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누구에게나 이렇게 습득한 잔재주가 있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쓸데없게만 보이지만, 남다른 지경에 다다른 잔재주들. 우리가 소위 취미라고 배우고 익혔던 것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진짜 필요한 공부라는 것이다. 이제껏 우리의 공부는 주객전도가 아닌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진짜 공부를 해야할 때다.


공부는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짜 공부를 하게 되면 몸도 저절로 건강해진다. 재미가 있고, 간절한 필요가 있는 공부는 집중력이 절로 드니 정신이 단단해질 것이요, 사념이 들 틈이 없으니 쓸데없는 망상이나 고민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몸에 대해 공부하는 것 역시 진짜 공부라고 말한다. 이것이 곧 수행이다.


습관적인 두통, 복통, 신경통에 반사적으로 약부터 찾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신체를 공부하고, 수행으로 생활습관을 단련하다보면 절로 공부도 되고, 건강도 찾을 수 있다. 수행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284p) 그렇다고 수행이라는 것이 대수로운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의 작은 습관들을 고치는데부터 우리가 의식하는 순간 그것이 수행이 되는 것이 아닐까.

 



4. 어떻게 배울 것인가 - 놀이와 이야기, 친구


무엇을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어떻게 공부하는가이다. 고미숙은 임꺽정과 친구들의 일화를 들어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다. 바로, 놀이와 이야기, 그리고 친구다. 놀이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놀이의 공부화, 노동의 놀이화를 의미한다. 놀이-공부-노동이 한 궤도에 있다면 얼마나 인생이 즐거울까! 그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경지인 것이다. 능률이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 생각만 해도 신명이 나는 일이다.


또 중요한 것이 바로 이야기, 말이다. 꺽정이와 칠두령들은 모두 한 입심을 자랑하고 있다. 그들의 말은 무엇보다 솔직하다. 속내를 활짝 드러내어 보이니, 그 말도 서로의 몸과 가슴을 막힘없이 통하게 만든다. 꺽정이와 친구들에게서 이러한 점은 진정 본받을 점이자 부러운 점이었다.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혹은 “네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어.”


우리는 서로 마주앉아 대화를 하면서도 모르는 게 많다.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에도 서툴다. 모든 말다툼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화되는 것이 아닐까? 내 본심을 한번 포장한 에둘러 말하기는 의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때때로 칼날같이 곤두선 말은 그야말로 무기보다 무섭게 마음을 찔러댄다. 그럼에도 속시원히 말다툼, 혹은 몸다툼하지 않고 꽁하게 되니 마음과 기운이 막힐 수밖에. 때문에 우리는 친구를 붙잡고 한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고 나서도, 때때로 가슴의 답답함을 온전히 털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속 시원히 정곡을 찔러 말하자. 서로를 성장시키지도 않고, 자극시키지도 않는 수다는 멈추고 본심을 드러내자. 상처받을까봐 솔직히 말을 못하겠다고? 내가 정녕 꺽정이와 그 친구들 못지않은 의리를 품고 있다면, 그 마음속에서 뱉어내는 말이 결코 악의적일리 없다. 오장육부가 건강한 친구라면, 의리가 담긴 날센 말도 온전히 받아주리라.


책을 읽는
내내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의 의리와 패기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정말 천하가 두렵지 않을 만큼 귀한 동지들. 이야기건 학문이건 즐겁게 나누기 위해서는 일단 친구, 관계의 문제를 잘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철저히 관계의 척도를 의리로 삼는다. 그야말로 의리에 죽고 산다. 때문에 오해가 생기든, 잘못을 저지르든 뒤끝이 없다. 의리, 신의라는 관계의 초석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들의 관계의 초석은 너무나 나약한 것이 아닐는지.


소위 인맥이라는 것을 맺고 끊는 척도는 무엇인가.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못한가. 친구 존재의 유용함이 아니던가. 때문에 우리의 관계는 참으로 쉽게도 끊어진다. 함께 붙어 지낼 때는 반짝 친하다가 서로의 갈길 찾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도 인맥이라는 명목으로 관계를 맺었다면, 광증에 시달리는 오주는 벌써 따돌림?면목을 과연 알아볼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때로 그 사람의 이름보다 직분, 소속이 서로의 뇌리? 관계 맺을 일이 참 잦다. 하지만 백수라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꾸려나갈 백수라면, 기꺼이 의리의 덕목을 체득해야 한다. 지금 이 세대에서 의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받는 친구 역시 주는 친구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 책을 열심히 읽어서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든지 혹은 스트레스에 찌들지 않도록 함께 산에 오른다든지 하는, 세상엔 돈 말고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들이 억수로 많다.(...) 어느 쪽으로든 출구를 터서 매끄럽게 흐르게만 해도 세상은 한층 넉넉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정의 경제학이야말로 청년실업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148p)




친구는 머물러 있는 관계가 아니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꼭 친구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 물질인가? 한 끼의 밥뿐인가. 분명 그것 말고도 주고받을 것이 ‘억수로’ 많을 것이다. 관계에 적합한 우정의 경제학 꾸리기. 우리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고민할 부분이다.


또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마치 청석골과 같이. 그것이 스터디가 될 수도 있고 토론의 장이 될 수도 있겠다. 매일 지난 학창시절 이야기만을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발전이 있는 대화가 오가는 만남이라면, 매번 새롭고 매번 즐거울 수 있지 않겠는가!

  
 

5. 건강한 신체, 건강한 사랑


백수 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세대를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게 우선이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 각종 ‘신종’ 질병은 신체만을 위협하지 않는다. 일단 내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기력이 없으면 마음에 우울이 들 일이 많다. 그렇게 되면 관계 역시 병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고미숙은 건강한 신체란, 결단과 용기를 주관하는 간신(간장과 신장), 생각을 주관하는 비위(비장과 위장) 사이에 간극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해야한다는 것이다.


생각은 많은데 행동이 따라주지 못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 그만큼의 잉여가 몸에 쌓이게 된다. 그 잉여가 바로 번뇌와 질병을 낳는다. 지행합일 혹은 언행일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122p)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징후중에 가장 문제시될 만한 것은 우리가 몸은 적게 쓰고 머리만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다. 여기서 머리라 함은 어떤 학문을 생각한다는 의미보다는 잔꾀, 수를 쓰거나 망상에 빠져있음을 의미한다. 21세기를 휘감고 있는 숱한 이미지 속에 우리의 머리(생각)은 잠식되어 버린지 오래다. 우리는 이제 이미지로 사고하고, 이미지를 사랑하고, 이미지를 꿈꾼다. 쉽게 말해 우리가 꿈꾼다고 말하는 인기 직종의 모습들은 대게 광고에서 보일 법한 하나의 멋진 이미지일 공산이 크다. 실제로 겪어보지도 않고, 만들어진 이미지를 꿈꾸는 일이 얼마나 허다한가. 단순한 공상 뿐 아니라 때로는 사랑도 이미지로 할 때가 많다. 이를테면, 외모만 가지고 사랑에 빠지는 경우, 혹은 내가 만들어둔 이미지, 틀에 고정시켜 사랑을 하다가 거기에 맞지 않는다고 낙심하는 경우가 바로 이미지-사랑이 아닐까.


사랑 역시 건강하게 해야한다. 이미지가 아니라 신체로 맞붙는 사랑을 ‘겪어야’한다. 꺽정이와 친구들을 보면 그들은 연애고민이라는 것이 없다. 연애에서 오는 즉각적인 기쁨, 설렘, 슬픔 등이 있을 뿐이다.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가 만나 대결하니 오해가 생길 틈이 없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소위 쿨한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마음도 그렇지 않은 척 감추고, 튕기고, 밀고 당기고. 이것이 정녕 쿨한 관계인가? 꺽정이와 친구들의 사랑을 보니 이런 시원시원한(그야말로 cool) 관계 앞에서 함부로 쿨하다는 표현을 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신체로 맞붙는 사랑은 때로 칼부림을 부를 지언정 뒤끝은 없다. 배신자, 혹은 잘못한 사람에게는 그에 응당한 책임이 뒤따를 뿐, 보이지 않는 사랑의 상처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캐릭터는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 물론 꺽정이처럼 마구잡이로 들이대고 몸으로 사랑을 하는 방식이 지금 세대와 꼭 맞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위에서 언급했던, 솔직한 대화와 대면(!)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요즘의 사랑을 하는 우리들이 꼭 배워야 할 점이다.



 

6. 백수의 지상미션!


밥 벌어먹고 사는 일부터, 사랑하는 일까지 백수에 삶에 필요한 지혜를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이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백수가 해야할 일은? 지행합일! 앎을 실천하는 일 뿐이다. 사실, 말이 쉽지 행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 적어도 요즘 같은 시대에 청석골을 꾸릴만한 호탕한 백수 동지를 만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일단 나부터가 임꺽정의 배짱을 좀 갖춰야겠다. 내가 변신하면 그에 걸맞은 친구들을 만나고, 그에 걸맞은 세상과 접속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은 길 위에서 이
어진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삶은 결코 예상대로 뻔히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다. 확실하고 안전해서 불안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아직 젊을 때 아직 청년의 몸을 가지고 있을 때, 한번 불확실하고 불안전한데도 불안없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을 읽고 난 내게 주어진 지상미션이다! 어쩐지 백수 생활이 조금은 더 흥미진진해질 것만 같다.



 

Posted by 프로듀서스
,
 

소설가의 각오 - 6점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문학동네
무라카미 라디오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까치글방




최근에 작가 에세이에 관심이 많다. 특별히 그것만 찾아 읽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최근 빌린 책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작가 에세이 집이다. 작가별로 찾아읽었는데, 이게 나름 국가별 구분도 된다. 루쉰의 에세이와 미루야마, 무라카미 에세이를 읽었고,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유럽작가의 에세이다. 나름 특색있고 읽기도 쉽고, 소설 못지 않게 재미있다. 그 중 일본의 동시대 작가임에도 불구 상당히 다른 감상을 전해준 두 작가가 인상깊어 포스팅한다.

루쉰같은 경우, 역시 에세이집에서조차 특유의 깊은 문장의 맛이 넘쳐났다. 뿐만 아니라 사회와 연륜이 담긴 글은 도저히 차 안에서 읽어낼 수 없을 만큼 무게가 있었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당시 혼란스러운 중국의 시대상황으로 인한 루쉰의 분노가 표출되어 있는데, 지금 한국정치에 비견해도 다를 것 없는 느낌에 더욱 그의 글이 와 닿았다. 루쉰은 특히 청년에 관심이 많아 중국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저기 질타와 당부의 글이 한국에서 읽는 나의 어깨에까지 쿵쿵 닿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글을 쓰려면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무라카미 라디오]는 책 제목만큼이나 가뿐하게 읽을 수 있는 수필집이다. 어제까지 붙들고 있던 [소설가의 각오](제목부터가 다르지 않은가!)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라멜같이 말랑말랑한 사람이고, 미루야마는 박하사탕 혹은 단단한 (딱딱한) 알사탕같은 사람이다.

무라카미 글은 때론 달달하고 군데군데 웃음짓게 하고 (그릇을 깨뜨려놓고 "여보, 저 할머니가 염력으로 내 손바닥을 미끄럽게 했다구" 외치는 무라카미를 상상해보라) 그 가운데 잔잔한 삶에의 이해가 감동을 준다. 반면 미루야마는 대쪽같고 칼같은 사유와 문체가 독자의 의지를 불끈 솟게 만들고 자세를 곧추 세우게 한다. 하여 무라카미 글이 종종 '에이, 이게 뭐야'하고 킬킬댈만큼 시시껄렁한 글들이 끼어있고, 미루야마의 글은 '이사람 뭥미'싶게, 자신의 넘치는 자부심을 반복해서 읎조려, 자랑을 보통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굳이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고 어쩌구, 그러니까 내가 첫 소설이 당선이 된건데, 다른 소설들이 너무 시시껄렁하다는 둥 어쩌고) 호오가 너무 명확해서 자기 관심외의 것에 극단적인 모멸감을 보이기도 한다. 그에 반해 무라카미는 이래도 응응~, 저래도 응응~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무라카미에게 누군가 "위선자!"라고 욕한다. 무라카미 곰곰히 생각한다."내가? 내가? 음음음... 뭐 솔직히 말하면,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랄까~응응)


그렇다고 해도 이 두 사람이 모두 일본 사람이라는 것은 어쩐지 납득이 간다. 일본에는 이런 '응응형인류'와 '사무라이형인류' 두 종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까?(그러니까 무라카미와 미루야마는 이 두 종류의 인간들의 전형이랄까.) 또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이 서로를 좋아하거나 친할 거라고는 상상이 안된다. 뭐 그건, 모를 일이다.



Posted by 프로듀서스
,

 

 

그건, 사랑이었네 - 10점
한비야 지음/푸른숲


 


성공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놀라지 마시길. 국제구호개발 NGO의 일개팀장인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해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혹은 닮고 싶은 여성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는 사실! 2006년에는 어느 신문사가 사십대 이하 성인 남녀 약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톱 10’ 중 7위에 뽑혔고 2009년애는 이화여대에서 조사한 ‘가장 닯고 싶은 한국 여성 2위’에까지 올랐다. 이게 무슨 일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205P)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만약 내게 그런 설문의 기회가 있었더라면 나 역시 한비야에게 내 소중한 한 표를 덥석 던지지 않았을까? 한비야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나에게 처음으로 닮고 싶은 ‘성공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언니’다. 여기서 ‘성공’과 ‘언니’의 의미는 소위 말하는 뜻과는 조금 다르다. 한비야를 지칭할 때만큼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한비야 언니가 내게 알려준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간 여러 권의 여행서적, 에세이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한비야는 <그건, 사랑이었네>를 통해 조금은 더 내밀한 속내를 드러낸다. 좀더 솔직한 얘기, 좀더 마음 깊숙한 이야기들이 한비야 특유의 발랄 문체에 고스란히 담겨 따뜻한 에너지로 전해져온다. 이번 에세이집을 통해 나는 내가 왜 한비야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한비야가 알려준, 조금은 다른 ‘성공’의 모습 때문이다.

 

...내가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이루었을 때 우리 모두가 함께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준다는 점이다. 그들이 공공의 선을 이루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성공의 열매를 맺는다면 그 열매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210p)

 

성공이 단순히 돈이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 여럿 끼 있는 인물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비야 역시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매력을 높이 사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비야는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혼자만 재미를 보는 사람이 아니다.

 

한비야의 성공은 “나눔의 성공”이다. 그녀의 직업이 누군가를 ‘구호’한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한비야의 인생관을 살펴보면 그녀는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 비전을 두고 사는 사람이다. 있으면 듬뿍 나누고,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누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받는 사랑이 얼마나 큰지 한비야는 누누이 말한다.

 

대게의 성공 에세이가 그러하다. 얼마나 외롭게, 악착같이 노력해서 성공을 이뤘는지. 빛나는 성취를 위해 얼마나 고독한 희생을 치렀는지 얘기하며,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하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무의식중에 품고 있던 성공의 모습도 그러한 것이었다. 빛나지만 이면엔 혼자만 아는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있는. 하지만 한비야가 알려준 성공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을 수 있는 성공을 하라고 말한다. 내 성공이 남들에게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성공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성공은 절대로 목표가 ‘돈’이나 ‘명예’가 될 수 없다. (그보다 훨씬 원대한 비전이 될 게 분명하다!)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갖추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한비야는 내게 이런 삶의 자극도 준다. 게다가, 그렇게 내가 향해갈 목표점에 돈이나 명예만이 아닌,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을 품을 수 있도록 좋은 길(멋진 길!)을 안내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비야는 ‘성공한 여성’일 뿐만 아니라 내겐 ‘언니’다. (절로 ‘언니’란 호칭이 나온다!) 책 곳곳에서 그녀의 에너지와 따뜻한 위로가 읽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한비야가 내게 성공의 방법을 일러주는 방법도 따뜻하고 친절하다. 그녀는 우연도 아니고, 타고난 배경도 아닌 스스로 개척한 인생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천부적이라기보다는 온전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나도 이렇게 하는데 네가 왜 못해!’라며 응원해준다. 그녀의 책을 보면 결코, 자신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해서 잘 이뤄냈다는 얘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한비야는 책을 읽는 사람까지 끌어낸다. 마치 옆에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길을 택한 후 잔뜩 긴장한 채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지금 당신과 똑같은 처지이고 똑같은 마음이라고. 그러니 당신과 나 우리 둘이 각자의 새로운 문을 힘차게 두드리자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자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할 테니 당신도 나를 생각해보라고. 그래서 마침내 각자가 두드리던 문이 활짝 열리면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등 두드려주며 그동안 애썼다, 수고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자고. (298p)

 

<그건, 사랑이었네>속에 담겨있는 한비야의 성공, 기쁨 때론 우울, 추억을 접해보면 곳곳에서 그녀가 얼마나 삶을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도 이 점이었다. 만약 그녀가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거머쥐지 못했더라도, 그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더라도, 그녀는 ‘지금’이라는 이름의 삶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 역시 내가 그녀만큼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 학벌이 혹은 내 직업이 어떠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녀보다 내 삶을 덜 사랑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동시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된 셈이다.

 

한비야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남에게 추천할 책 목록도 만들고 싶고, 앞으로 살면서 꼭 해야할 일 목록도 짜보고 싶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혹은 자신 없었던 일들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제아무리 좋은 자기계발서적도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한 적은 없었다. 왜 그럴까?

 

한비야의 책은 내가 어떤 일을 ‘해야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고 나서 나 역시 한비야처럼 ‘하고 싶었다!’ 무엇을? 모두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성공을, 지금의 나의 삶을 끌어안고 예뻐해주고 한껏 사랑하는 일을! 지금 당장 하고 싶다.

 

 

 

 


Posted by 프로듀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