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예전에 독서는 취미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 독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재미로 읽는 책은 킬링 타임일 뿐이고, 어떤 책을 읽었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읽지 않은 만 못하다. (그 시간에 더 재미난 걸 못했으니까) 물론 책을 읽는다고 당장에 짠 하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시간을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읽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내 삶에 영향을 끼치겠구나 하는 예감. 언젠가 내가 이 책의 한 문장을 붙들게 되겠구나 싶은 직감.

 

학창시절, 어린 나이에도 불구 굉장한 독서량을 자랑하던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친구는 책을 읽지 않은 녀석보다도 인성과 성격 면에서, 그야말로 꽝이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늘 관심받기만 바라던 친구였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사람이 변할 수 없다면 독서란 참으로 시시한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리고 오늘 문득 점심을 먹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올라오는 순간, 이와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다면 어제와 오늘의 나는 당연히 달라야 하고, 어제와 오늘의 말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저번 주와 이번 주, 이번 달과 다음 달은 말이다.

 

 

적어도 시시해지지는 말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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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내 털옷의 실오라기라도 뽑아 어떻게 해서든 잇고 싶었던 말은 그쳤고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어슬렁 거리고
                                                                   알고 있던 일도 막상 닥치면 이렇게 데면데면데면

 

둘,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을 때, 나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그 분노를 어느 대상에 분출하면서 나도 모르게 불행을 택한다. 그런데 오늘 보니 현명한 어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늘 정념의 세계에 빠져있는 나.

가끔은 좀 쿨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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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형경 (푸른숲,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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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 김형경에 따르면,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표출하는 행위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고 그것은 때때로 오해되어있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의 진심과 진정성은 무의식의 영역에 위치한 듯 한데, 그것은 대부분 의식 기제에 부딪쳐 고스란히 표출되기 어렵다. (과연 어떠한 인위적인 의식 (혹은 사회성)이 없는 사람 (그렇다면 자연에서 태어난 어린아이?)이라면 자신의 본심(이것과 본능은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이 그대로 표출될까?

 

아무것도 거침없이,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내 진심만으로 이루어진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망나니 같겠지? 하지만 좀더 유쾌하고 매력적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요란한 진창 같을 지도 몰라!

 

그러므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 혹은 짐작되는 행동(내가 나를 짐작하는 경우는 오해할 소지가 많다)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한 꺼풀 벗겨 혹은 한층 더 깊은 내면에서 분석해봐야겠다.

 

너 왜 좋으니?

너 왜 슬프니?

너 왜 기쁘니?

너 왜 그렇게 생각하고

너 왜 이렇게 쓰니?

 

 

 

***오전 내내 오벤바하의 <쟈클린의 눈물>을 들었다. 썩 잘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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