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여행을 ‘당하는’ 남자, 헨리.

시간여행에 관한 많은 이야기와 영화가 많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의 속성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 역시 그러한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다. 시간여행이라고 하면, 대부분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타임머신이나 그런 속성을 가진 장치로 인해 과거, 미래를 여행한다는 것이 기본 설정인데, 이 영화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에게 시간여행은 어떤 기회나 축복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주인공 헨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다른 공간에 놓여지게 되기 때문이다.

 



난감한건 이뿐만이 아니다.
헨리는 다른 시공간으로 옮겨질 때 발가벗겨진 채로 놓여진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뚝 떨어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것인가. 물론 옮겨진 공간에서 난처한 일-쫒기거나 연행되거나-을 겪게 되도 다시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군데군데 유머를 만들어내지만, 아름다운 아내를 곁에 두고도 시도때도 없이 사라져버리니 이 남자 인생, 이것 참 녹록치 않다.





영화는 처음부터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넘나들며,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헨리를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는 헨리의 몸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듯 끊임없이 시간을 옮긴다. 물론 이 러한 플롯은 처음부터 강한 흥미를 유발시키지만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피할 수 없다. 일단 아직 스토리를 전달시키지 못했는데도 불구, 시간을 넘나드는 초반 스토리는 관객들로 하여금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혼란을 준다. 그보다 더 큰 아쉬운 점은 끊임없이 시공간이 바뀌고 인물의 상황이 바뀌기 때문에 관객들이 감정을 끌어낼 시간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밌을 법하면, 현재로 돌아가고, 눈물이 날 듯 하면 또 과거로 날아가는 등 말이다. 이런 남편을 둔 아내로서는 무척이나 기구한 삶일 터인데, 우리는 아내의 심정에 공감할 틈도 없이 헨리의 시간여행을 쫓아가야만 했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가장 긴장이 되었던 장면은, 평화로운 어느 날 갑자기 죽기 직전의 헨리의 모습이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다. 지금과 별 다를 바 없는 헨리의 모습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모습. 이것은 헨리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과연 자신의 죽음을 본 헨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복선이 영화 후반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큰 갈등이 되는 것인데, 나는 제목이 제목인 만큼 (즉, 시간여행자의 ‘아내’인 만큼) 여기서부터 아내의 활약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헨리도 그의 아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것을 바꿀 수 있었느냐도 의문이고, 아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도 의문이었지만, 어쨌거나 아내는 그런 헨리를 끝까지 사랑하고 옆을 지켜줄 뿐이었다는 것이... 나는 아쉽게 느껴졌다.







“내가 원한 삶은 이런 게 아니었어!!! 그 어느 것도 내 선택이 없었다구.”

  애꿎게 시간여행자에게 반해버려, 기구한 사랑을 해나가는 아내 클레어의 외침이 가슴 아프게 했다. 결국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클레어는 시간여행자를 기다리게 된다. 흠, 로맨틱하긴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참으로 기구하지 아니할 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사라지는 남자를 평생 기다리다니...


"클레어, 당신에게 열녀문을 허하오."



PS. 하지만 우리 헥토르 "에릭바나"의 연기와 건장한 신체(...)를 감상하는 재미는 별 다섯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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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책 고미숙의 <임꺽정, 길위에서 펼치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의 리뷰임에 동시에, 2009년 8월, 9월 수유+너머에서 곰쑥쌤과 백수동지들과 공부하면서 배우고 생각했던 시간을 총!정리해놓은 글이기도 하다. 뭐, 쓰고 나니 그렇게 되었다. 고로, 뭘 보고 배웠는지 궁금하시다면 스크롤의 압박을 이겨보시라, 이 말이다***

  






 

1. 백수(白手), 새로운 길을 열다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나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모두가 당연시 따르는 ‘학교-취직-결혼’의 운동벡터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신입사원이었다. 대학 새내기 때만해도 내가 선택한 전공공부를 하며 ‘나만의 길’을 개척하겠노라고 기세등등한 나였는데! 지금의 나는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분야 쪽에서 직장을 갖고 명함을 갖고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심하는 그런 사회 초년생이 되어있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열심히만 하면 될까? 열심히 출근하고, 열심히 시키는 일 하고, 퇴근하기 직전까지 열심을 다하다보면 언젠가는 승진을 할테고, 그 다음 단계의 직원이 되겠지. 내가 원하는 돈을 월급으로 받으려면 한 십년쯤 일하면 될까? 그때쯤에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으려나? 이런 상상을 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앞날이 너무나 명확하고 뚜렷하고 생생했다. 아마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면 그렇게 되리라. 어째서 이렇게 뚜렷한 미래가 두려움으로 다가올까! 분명 두려움이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내가 나 자신의 이름을 잃고, 그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 혹은 무명의 직장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얼른 이 고리를 끊고 이 컨베이어 시스템처럼 굴러가는 인생의 행로에서 탈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랬다. ‘백수’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참 쉬웠다.


내가 선택한 백수는 직장을 잃은 상태가 아니라, 백수라는 이름으로 변신하여 다른 삶의 방향을 모색코자 한 것이었다. 이런 나의 심오한(?) 계획을 알 리 없는 지인들은 으레 나를 그저 아홉시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19년만에 최악, 청년실업 대란’의 일개 병정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대수냐. 이제부터 정신만 바짝 차리면 상상도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말이다!

 

2. 다른 길, 임꺽정을 만나다!



하지만 백수(白手)를 꾸려가는 일은 쉽지많은 않았다. 일단 백수를 선포하고 나니, 나는 원뜻 그대로 흰 손, 즉 빈 손 일 뿐이었다. 과연 이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본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교에서 못다한 진짜 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껏 늘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돈 벌 궁리만 하다보니((그 마저도 결국 궁리해내지 못했지만), 이런 낯선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가 않았다. 도움을 줄 친구도 선배도 찾기 어려웠다.



이런 내게, 『임꺽정』은 그야말로 내 삶의 문제를 대면하고 있는 텍스트였다. 그야말로 배움과 삶이 접속될 수 있는 기회였다. 내 백수생활과 그들의 생활을 비교해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이지 않을까! 삶에의 질문에 답을 품고 있는 책이야말로 진짜 고전이 아닐까! 이렇게 절실한 책이니, 한 문장문장이 내게 지도처럼 보이고, 단어단어가 암호처럼 자극이 되었다. 호적수를 만난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책장을 넘겨갔다. 책 속에 난 길을 따라, 2009년 지금의 백수가 유쾌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백수의 고민이 무엇인가?


아니, 단도직입적으로 나의 고민이 무엇인가 살펴보자. 이제, 어떻게 돈을 벌고 먹고 살 것인가? 나만의 길, 나만의 재주를 어떻게 발견하고 갈고닦을 것인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고 이어나갈 것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있는 질문이리라. 저자 고미숙은 이러한 청년들의 고민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이에 걸맞게 책 목차를 꾸려놓았다. 경제-공부-우정-사랑! 친구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어도 숱한 고민들이 대부분 저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과연 고미숙이 임꺽정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다른 길은 무엇일까.

 

3. 배움이 인생을 바꾼다!


 
저자 고미숙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배움, 앎이다. 공부는 그야말로 존재를 변신시켜줄 수 있는 ‘비법?게 공부의 어감은 그야말로 지리멸렬하고 진부하겠지니다. 나를 성장시키는 공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요한 배움이 진짜 공부가 되는 것이다.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존재변신을 꾀할 수 있는 공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그 방면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공부 등등.


신분이 나뉘어 있고, 정규교육은 받아볼 기회 없었던 임꺽정과 친구들에게는 그저 놀이 연마, 기술 연마가 공부가 되었다. 혹은 앞길을 열어갈 수 있는 사주 명리학. 도학을 통해 운명처럼 놓여진 자기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이 달인이 되어 간다. 하루 종일 그것만 집중하고 반복하기 저절로 달인이 될 수 밖에. 더군다나 달인이 되는 데의 핵심은 무목적이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 취직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그냥 하는 공부, 재미가 동해서 하는 공부래야 내 흥(興 )으로 공부해나갈 수 있다. 나는 이런 공부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누구에게나 이렇게 습득한 잔재주가 있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쓸데없게만 보이지만, 남다른 지경에 다다른 잔재주들. 우리가 소위 취미라고 배우고 익혔던 것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진짜 필요한 공부라는 것이다. 이제껏 우리의 공부는 주객전도가 아닌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진짜 공부를 해야할 때다.


공부는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짜 공부를 하게 되면 몸도 저절로 건강해진다. 재미가 있고, 간절한 필요가 있는 공부는 집중력이 절로 드니 정신이 단단해질 것이요, 사념이 들 틈이 없으니 쓸데없는 망상이나 고민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몸에 대해 공부하는 것 역시 진짜 공부라고 말한다. 이것이 곧 수행이다.


습관적인 두통, 복통, 신경통에 반사적으로 약부터 찾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신체를 공부하고, 수행으로 생활습관을 단련하다보면 절로 공부도 되고, 건강도 찾을 수 있다. 수행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284p) 그렇다고 수행이라는 것이 대수로운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의 작은 습관들을 고치는데부터 우리가 의식하는 순간 그것이 수행이 되는 것이 아닐까.

 



4. 어떻게 배울 것인가 - 놀이와 이야기, 친구


무엇을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어떻게 공부하는가이다. 고미숙은 임꺽정과 친구들의 일화를 들어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 있다. 바로, 놀이와 이야기, 그리고 친구다. 놀이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놀이의 공부화, 노동의 놀이화를 의미한다. 놀이-공부-노동이 한 궤도에 있다면 얼마나 인생이 즐거울까! 그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경지인 것이다. 능률이 오르는 것은 당연지사! 생각만 해도 신명이 나는 일이다.


또 중요한 것이 바로 이야기, 말이다. 꺽정이와 칠두령들은 모두 한 입심을 자랑하고 있다. 그들의 말은 무엇보다 솔직하다. 속내를 활짝 드러내어 보이니, 그 말도 서로의 몸과 가슴을 막힘없이 통하게 만든다. 꺽정이와 친구들에게서 이러한 점은 진정 본받을 점이자 부러운 점이었다.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혹은 “네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어.”


우리는 서로 마주앉아 대화를 하면서도 모르는 게 많다.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에도 서툴다. 모든 말다툼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화되는 것이 아닐까? 내 본심을 한번 포장한 에둘러 말하기는 의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때때로 칼날같이 곤두선 말은 그야말로 무기보다 무섭게 마음을 찔러댄다. 그럼에도 속시원히 말다툼, 혹은 몸다툼하지 않고 꽁하게 되니 마음과 기운이 막힐 수밖에. 때문에 우리는 친구를 붙잡고 한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고 나서도, 때때로 가슴의 답답함을 온전히 털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속 시원히 정곡을 찔러 말하자. 서로를 성장시키지도 않고, 자극시키지도 않는 수다는 멈추고 본심을 드러내자. 상처받을까봐 솔직히 말을 못하겠다고? 내가 정녕 꺽정이와 그 친구들 못지않은 의리를 품고 있다면, 그 마음속에서 뱉어내는 말이 결코 악의적일리 없다. 오장육부가 건강한 친구라면, 의리가 담긴 날센 말도 온전히 받아주리라.


책을 읽는
내내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의 의리와 패기가 무척이나 부러웠다. 정말 천하가 두렵지 않을 만큼 귀한 동지들. 이야기건 학문이건 즐겁게 나누기 위해서는 일단 친구, 관계의 문제를 잘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철저히 관계의 척도를 의리로 삼는다. 그야말로 의리에 죽고 산다. 때문에 오해가 생기든, 잘못을 저지르든 뒤끝이 없다. 의리, 신의라는 관계의 초석이 굳건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들의 관계의 초석은 너무나 나약한 것이 아닐는지.


소위 인맥이라는 것을 맺고 끊는 척도는 무엇인가.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못한가. 친구 존재의 유용함이 아니던가. 때문에 우리의 관계는 참으로 쉽게도 끊어진다. 함께 붙어 지낼 때는 반짝 친하다가 서로의 갈길 찾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도 인맥이라는 명목으로 관계를 맺었다면, 광증에 시달리는 오주는 벌써 따돌림?면목을 과연 알아볼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때로 그 사람의 이름보다 직분, 소속이 서로의 뇌리? 관계 맺을 일이 참 잦다. 하지만 백수라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꾸려나갈 백수라면, 기꺼이 의리의 덕목을 체득해야 한다. 지금 이 세대에서 의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받는 친구 역시 주는 친구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 책을 열심히 읽어서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든지 혹은 스트레스에 찌들지 않도록 함께 산에 오른다든지 하는, 세상엔 돈 말고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들이 억수로 많다.(...) 어느 쪽으로든 출구를 터서 매끄럽게 흐르게만 해도 세상은 한층 넉넉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정의 경제학이야말로 청년실업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148p)




친구는 머물러 있는 관계가 아니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꼭 친구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 물질인가? 한 끼의 밥뿐인가. 분명 그것 말고도 주고받을 것이 ‘억수로’ 많을 것이다. 관계에 적합한 우정의 경제학 꾸리기. 우리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고민할 부분이다.


또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마치 청석골과 같이. 그것이 스터디가 될 수도 있고 토론의 장이 될 수도 있겠다. 매일 지난 학창시절 이야기만을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발전이 있는 대화가 오가는 만남이라면, 매번 새롭고 매번 즐거울 수 있지 않겠는가!

  
 

5. 건강한 신체, 건강한 사랑


백수 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세대를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게 우선이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 각종 ‘신종’ 질병은 신체만을 위협하지 않는다. 일단 내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기력이 없으면 마음에 우울이 들 일이 많다. 그렇게 되면 관계 역시 병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고미숙은 건강한 신체란, 결단과 용기를 주관하는 간신(간장과 신장), 생각을 주관하는 비위(비장과 위장) 사이에 간극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해야한다는 것이다.


생각은 많은데 행동이 따라주지 못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 그만큼의 잉여가 몸에 쌓이게 된다. 그 잉여가 바로 번뇌와 질병을 낳는다. 지행합일 혹은 언행일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122p)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징후중에 가장 문제시될 만한 것은 우리가 몸은 적게 쓰고 머리만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다. 여기서 머리라 함은 어떤 학문을 생각한다는 의미보다는 잔꾀, 수를 쓰거나 망상에 빠져있음을 의미한다. 21세기를 휘감고 있는 숱한 이미지 속에 우리의 머리(생각)은 잠식되어 버린지 오래다. 우리는 이제 이미지로 사고하고, 이미지를 사랑하고, 이미지를 꿈꾼다. 쉽게 말해 우리가 꿈꾼다고 말하는 인기 직종의 모습들은 대게 광고에서 보일 법한 하나의 멋진 이미지일 공산이 크다. 실제로 겪어보지도 않고, 만들어진 이미지를 꿈꾸는 일이 얼마나 허다한가. 단순한 공상 뿐 아니라 때로는 사랑도 이미지로 할 때가 많다. 이를테면, 외모만 가지고 사랑에 빠지는 경우, 혹은 내가 만들어둔 이미지, 틀에 고정시켜 사랑을 하다가 거기에 맞지 않는다고 낙심하는 경우가 바로 이미지-사랑이 아닐까.


사랑 역시 건강하게 해야한다. 이미지가 아니라 신체로 맞붙는 사랑을 ‘겪어야’한다. 꺽정이와 친구들을 보면 그들은 연애고민이라는 것이 없다. 연애에서 오는 즉각적인 기쁨, 설렘, 슬픔 등이 있을 뿐이다.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가 만나 대결하니 오해가 생길 틈이 없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소위 쿨한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마음도 그렇지 않은 척 감추고, 튕기고, 밀고 당기고. 이것이 정녕 쿨한 관계인가? 꺽정이와 친구들의 사랑을 보니 이런 시원시원한(그야말로 cool) 관계 앞에서 함부로 쿨하다는 표현을 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신체로 맞붙는 사랑은 때로 칼부림을 부를 지언정 뒤끝은 없다. 배신자, 혹은 잘못한 사람에게는 그에 응당한 책임이 뒤따를 뿐, 보이지 않는 사랑의 상처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캐릭터는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 물론 꺽정이처럼 마구잡이로 들이대고 몸으로 사랑을 하는 방식이 지금 세대와 꼭 맞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위에서 언급했던, 솔직한 대화와 대면(!)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요즘의 사랑을 하는 우리들이 꼭 배워야 할 점이다.



 

6. 백수의 지상미션!


밥 벌어먹고 사는 일부터, 사랑하는 일까지 백수에 삶에 필요한 지혜를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이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백수가 해야할 일은? 지행합일! 앎을 실천하는 일 뿐이다. 사실, 말이 쉽지 행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 적어도 요즘 같은 시대에 청석골을 꾸릴만한 호탕한 백수 동지를 만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일단 나부터가 임꺽정의 배짱을 좀 갖춰야겠다. 내가 변신하면 그에 걸맞은 친구들을 만나고, 그에 걸맞은 세상과 접속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은 길 위에서 이
어진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삶은 결코 예상대로 뻔히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다. 확실하고 안전해서 불안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아직 젊을 때 아직 청년의 몸을 가지고 있을 때, 한번 불확실하고 불안전한데도 불안없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을 읽고 난 내게 주어진 지상미션이다! 어쩐지 백수 생활이 조금은 더 흥미진진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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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 6점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문학동네
무라카미 라디오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까치글방




최근에 작가 에세이에 관심이 많다. 특별히 그것만 찾아 읽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최근 빌린 책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작가 에세이 집이다. 작가별로 찾아읽었는데, 이게 나름 국가별 구분도 된다. 루쉰의 에세이와 미루야마, 무라카미 에세이를 읽었고,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유럽작가의 에세이다. 나름 특색있고 읽기도 쉽고, 소설 못지 않게 재미있다. 그 중 일본의 동시대 작가임에도 불구 상당히 다른 감상을 전해준 두 작가가 인상깊어 포스팅한다.

루쉰같은 경우, 역시 에세이집에서조차 특유의 깊은 문장의 맛이 넘쳐났다. 뿐만 아니라 사회와 연륜이 담긴 글은 도저히 차 안에서 읽어낼 수 없을 만큼 무게가 있었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당시 혼란스러운 중국의 시대상황으로 인한 루쉰의 분노가 표출되어 있는데, 지금 한국정치에 비견해도 다를 것 없는 느낌에 더욱 그의 글이 와 닿았다. 루쉰은 특히 청년에 관심이 많아 중국의 미래는 청년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저기 질타와 당부의 글이 한국에서 읽는 나의 어깨에까지 쿵쿵 닿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제대로 글을 쓰려면 한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무라카미 라디오]는 책 제목만큼이나 가뿐하게 읽을 수 있는 수필집이다. 어제까지 붙들고 있던 [소설가의 각오](제목부터가 다르지 않은가!)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라멜같이 말랑말랑한 사람이고, 미루야마는 박하사탕 혹은 단단한 (딱딱한) 알사탕같은 사람이다.

무라카미 글은 때론 달달하고 군데군데 웃음짓게 하고 (그릇을 깨뜨려놓고 "여보, 저 할머니가 염력으로 내 손바닥을 미끄럽게 했다구" 외치는 무라카미를 상상해보라) 그 가운데 잔잔한 삶에의 이해가 감동을 준다. 반면 미루야마는 대쪽같고 칼같은 사유와 문체가 독자의 의지를 불끈 솟게 만들고 자세를 곧추 세우게 한다. 하여 무라카미 글이 종종 '에이, 이게 뭐야'하고 킬킬댈만큼 시시껄렁한 글들이 끼어있고, 미루야마의 글은 '이사람 뭥미'싶게, 자신의 넘치는 자부심을 반복해서 읎조려, 자랑을 보통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굳이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고 어쩌구, 그러니까 내가 첫 소설이 당선이 된건데, 다른 소설들이 너무 시시껄렁하다는 둥 어쩌고) 호오가 너무 명확해서 자기 관심외의 것에 극단적인 모멸감을 보이기도 한다. 그에 반해 무라카미는 이래도 응응~, 저래도 응응~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무라카미에게 누군가 "위선자!"라고 욕한다. 무라카미 곰곰히 생각한다."내가? 내가? 음음음... 뭐 솔직히 말하면,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랄까~응응)


그렇다고 해도 이 두 사람이 모두 일본 사람이라는 것은 어쩐지 납득이 간다. 일본에는 이런 '응응형인류'와 '사무라이형인류' 두 종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을까?(그러니까 무라카미와 미루야마는 이 두 종류의 인간들의 전형이랄까.) 또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이 서로를 좋아하거나 친할 거라고는 상상이 안된다. 뭐 그건,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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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 10점
한비야 지음/푸른숲


 


성공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놀라지 마시길. 국제구호개발 NGO의 일개팀장인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해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혹은 닮고 싶은 여성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는 사실! 2006년에는 어느 신문사가 사십대 이하 성인 남녀 약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톱 10’ 중 7위에 뽑혔고 2009년애는 이화여대에서 조사한 ‘가장 닯고 싶은 한국 여성 2위’에까지 올랐다. 이게 무슨 일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205P)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만약 내게 그런 설문의 기회가 있었더라면 나 역시 한비야에게 내 소중한 한 표를 덥석 던지지 않았을까? 한비야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나에게 처음으로 닮고 싶은 ‘성공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언니’다. 여기서 ‘성공’과 ‘언니’의 의미는 소위 말하는 뜻과는 조금 다르다. 한비야를 지칭할 때만큼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한비야 언니가 내게 알려준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간 여러 권의 여행서적, 에세이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한비야는 <그건, 사랑이었네>를 통해 조금은 더 내밀한 속내를 드러낸다. 좀더 솔직한 얘기, 좀더 마음 깊숙한 이야기들이 한비야 특유의 발랄 문체에 고스란히 담겨 따뜻한 에너지로 전해져온다. 이번 에세이집을 통해 나는 내가 왜 한비야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한비야가 알려준, 조금은 다른 ‘성공’의 모습 때문이다.

 

...내가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이루었을 때 우리 모두가 함께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준다는 점이다. 그들이 공공의 선을 이루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성공의 열매를 맺는다면 그 열매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210p)

 

성공이 단순히 돈이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 여럿 끼 있는 인물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비야 역시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매력을 높이 사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비야는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혼자만 재미를 보는 사람이 아니다.

 

한비야의 성공은 “나눔의 성공”이다. 그녀의 직업이 누군가를 ‘구호’한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한비야의 인생관을 살펴보면 그녀는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 비전을 두고 사는 사람이다. 있으면 듬뿍 나누고,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누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받는 사랑이 얼마나 큰지 한비야는 누누이 말한다.

 

대게의 성공 에세이가 그러하다. 얼마나 외롭게, 악착같이 노력해서 성공을 이뤘는지. 빛나는 성취를 위해 얼마나 고독한 희생을 치렀는지 얘기하며,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하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무의식중에 품고 있던 성공의 모습도 그러한 것이었다. 빛나지만 이면엔 혼자만 아는 고독과 외로움이 묻어있는. 하지만 한비야가 알려준 성공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을 수 있는 성공을 하라고 말한다. 내 성공이 남들에게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성공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성공은 절대로 목표가 ‘돈’이나 ‘명예’가 될 수 없다. (그보다 훨씬 원대한 비전이 될 게 분명하다!)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갖추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한비야는 내게 이런 삶의 자극도 준다. 게다가, 그렇게 내가 향해갈 목표점에 돈이나 명예만이 아닌,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을 품을 수 있도록 좋은 길(멋진 길!)을 안내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비야는 ‘성공한 여성’일 뿐만 아니라 내겐 ‘언니’다. (절로 ‘언니’란 호칭이 나온다!) 책 곳곳에서 그녀의 에너지와 따뜻한 위로가 읽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한비야가 내게 성공의 방법을 일러주는 방법도 따뜻하고 친절하다. 그녀는 우연도 아니고, 타고난 배경도 아닌 스스로 개척한 인생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천부적이라기보다는 온전히 노력하는 모습으로 ‘나도 이렇게 하는데 네가 왜 못해!’라며 응원해준다. 그녀의 책을 보면 결코, 자신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해서 잘 이뤄냈다는 얘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한비야는 책을 읽는 사람까지 끌어낸다. 마치 옆에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길을 택한 후 잔뜩 긴장한 채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지금 당신과 똑같은 처지이고 똑같은 마음이라고. 그러니 당신과 나 우리 둘이 각자의 새로운 문을 힘차게 두드리자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자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할 테니 당신도 나를 생각해보라고. 그래서 마침내 각자가 두드리던 문이 활짝 열리면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등 두드려주며 그동안 애썼다, 수고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자고. (298p)

 

<그건, 사랑이었네>속에 담겨있는 한비야의 성공, 기쁨 때론 우울, 추억을 접해보면 곳곳에서 그녀가 얼마나 삶을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도 이 점이었다. 만약 그녀가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거머쥐지 못했더라도, 그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더라도, 그녀는 ‘지금’이라는 이름의 삶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 역시 내가 그녀만큼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 학벌이 혹은 내 직업이 어떠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녀보다 내 삶을 덜 사랑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동시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된 셈이다.

 

한비야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남에게 추천할 책 목록도 만들고 싶고, 앞으로 살면서 꼭 해야할 일 목록도 짜보고 싶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혹은 자신 없었던 일들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제아무리 좋은 자기계발서적도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한 적은 없었다. 왜 그럴까?

 

한비야의 책은 내가 어떤 일을 ‘해야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고 나서 나 역시 한비야처럼 ‘하고 싶었다!’ 무엇을? 모두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성공을, 지금의 나의 삶을 끌어안고 예뻐해주고 한껏 사랑하는 일을! 지금 당장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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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10점
박민규 지음/예담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눈에 익은 그림인데 어딘가 낯섭니다. 당신의 책 표지에 걸린 이 그림은... 어린 공주도, 그림 속에 자화상도 아니고, 못생긴 시녀 한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고전풍의 제목과 잘 어울리면서 마음이 아련해지는게.. 게다가 장편소설이라니 당신의 예전 삼미슈퍼스타즈를 기억하고 있는 팬으로서 마음이 절로, 설레인건 저 뿐만이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펼친 첫 장. 사랑에 빠진 스무 살 커플의, 앞뒤 없는 애뜻한 이야기는 어쩐지 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스무살, 그리고 첫사랑이라. 이미 지나와버린 나이라서, 늘 꿈꿔왔지만 막상 스무 살이 되자 그 나이가 별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아버린 나이라서, 제게 스무살의 첫사랑 이야기는 마치 드라마처럼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감할 수 없었고... 심지어 허세스럽기까지 느껴졌다는... 솔직한 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사랑은 일생일대의 로망이기 때문에, 스무살이 넘은 나에게는 앞으로 일어나길 바라는 꿈같은 일인데... 훗날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확신은 차마 못하겠고... 이 둘은 누구길래 벌써 그런 사랑을 지금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자랑질이냐, 싶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블링블링 무비스타 아버지와 그의 곁에 있어서 더욱 남루한 색이 짙은 어머니. 그런 가정에서 당신은 외모에 대한 불신. 보이는 것 너머의 아름다움을 생각했습니다. 짧지 않은 당신의 과거 속에서 저는 그런 당신의 생각을 충분히 납득...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였기에,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볼품없는 얼굴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그 너머의 진실들을 가리는지 당신은 남보다 일찍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당신의 사랑이야기보다 훨씬 중요...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미인에게 첫눈에 반하듯 운명적으로 못생긴 여자에게 꽂혔다...고 했다면, 얼마나 이 이야기는 시시했을까요. 당신이 왜 남들과 달리 못생긴 여자에게 호감을 느꼈는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쁜 여자를 사랑하기 마련인데 당신은 왜 그러지 않았는지, 저는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해야만 이 이야기에 매료될 수 있으니까요. 하여 저는 이 이야기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이내 첫사랑에 빠지듯 당신의 사랑이야기에 설레기 시작했으며... 때론 안타까운 마음에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얼마 남지 않은 책장을 한 장 한 장 아쉽게 넘겨가며 읽었습니다. 네, 저는,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야기 속에 사랑이야기는 딱히 별 사건은 없지만... 대신 당신과 그녀의 섬세한 내면의 소리... 그리고 변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들이 사랑이라고, 둘이서 한 특별한 일들, 에피소드, 추억보다도, 함께 있을 때의 설렘과 고민들, 기다림, 변화... 그것들이 사랑이 될 수 있다고 당신은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요한이 쏟아내는 사랑과 세상에 대한 말들이 군데군데 제 마음 깊숙이 다가와서, 저는 몇 번이고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외모지상주의 풍조에 비롯, 이미지의 노예가 된 요즘의 풍조에 대해서 같이 개탄하고... 그러면서 내 자신 역시 ‘요즘의 것’과 다름없음을 반성하고... 돌아보게 되고... 특히나 사랑에 있어서 얼마나 이미지를 숭배해왔던가.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걸었던 일이 얼마나 헛된가. 그것을 처음으로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이제껏 사회과학서적이나 자기계발서적 속에서 “외면의 것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 너머의 진실을 봐라. 이미지의 노예가 되지 말아라!”라는 명령을 들은 적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이렇게 마음에 와 닿아... 내 삶과 직결되는 반성을 촉구하고... 왜 그러지 말아야 하는지, 이미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구체적이고 또렷하게 가르쳐준 것은... 당신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것이 소설이 가진,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니었을까요... 단순히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과 이야기가 내 과거와 현재를 헤집으며 사랑과 외모(구체적으로 잘 생긴 것)에 대한 내 망상과 환상을 따끔히 꼬집어 주어... 저는 무척이나 개운하고 통쾌했습니다.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외롭다고... 그렇게 외치고 있는데도, 서로 보듬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상처를 내기 일쑤입니다. 반쪽의 가슴이 외로우면, 남은 반쪽에게 자신의 반쪽의 사랑을 부어, 하나를 이뤄내면 될 텐데...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면 되는데 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고 서로 외롭다고만 울부짖을까... 물론 그 사람들 속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저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믿지 않기 때문이지. 기대하지 않고... 서로를 발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야.

 

그녀에게 불을 켜준 당신의 마음은, 무척이나 설레고 아름다웠습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떻게 생긴 사람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느냐가 아니고...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누리고 있는가, 얼마만큼의 행복과 얼마만큼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을의 쌀쌀한 고궁도 봄날의 것보다 아름다울 것이고, 김치찌개 냄새가 나는 어둔 골목도 가로등 반짝이는 로맨틱한 길이 될 수 있다는 것.


저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떠난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곁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변명은 있는 척, 아는 척하는 드라마에서나 떠들어대는 핑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것에 대해서만큼은, 조금 식상하단 느낌도 지울 수 없었지만... 공감했습니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간 당신이 변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 떠날 것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지요. 그런 그녀의 진심이 담긴 편지는 그간 그녀가 얼마나 어두운 시간을 살아왔는지. 그녀가 선택할 수 없었던 외모 때문에, 고작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왔는지 들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신도 그랬겠지요. 그랬기에 그녀가 처음으로 그렇게 어렵게 꺼낸 그 말, “사랑합니다.”가 그렇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이겠지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이 이야기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에, 그와 그녀가 만나지 못하고 멀리 서로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는 물론 애뜻하고 아련하지만, 그녀가 과거에 받았을 고통을 회상하고, 마음 아파하는 당신의 말들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는데도 불구, 얼굴이 이쁘다는 이유만으로 반감을 갖았다는 이야기는, 게다가 이쁜 여자친구가 속물에다 진지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은, 뭐랄까. 못생긴 여자는 이렇다,는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편견이 아닐런지요. 물론 거기서 예쁘고 현명한 여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개되는 것도 황당하겠지만... 한쪽으로만 기운 목소리가 끊임없이 같은 것을 비판하고, 같은 것을 슬퍼하는 부분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이제 요한의 목소리가 되어, 세상물정비판 2부를 쏟아내고 있었거든요. 뒤로 갈수록 말투는 거세지고, 반감은 더욱 단단해져서.

 
그리고 난데없는 해피엔딩은, 이제껏 오래오래 끌어왔던 마음들이 와르르 균형을 잃고 쏟아지는 듯이... 아쉬웠다는 솔직한 소감도 덧붙입니다. 물론 그것이 왜 그렇게 난데없고 급작스러웠는지에 대해 뒷부분에서 다시 이야기하고 있지만. 반전과도 같은 writer's cut...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저는 그 부분을 읽고 한참 공허한 기분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참 좋았는데, 그런 세 사람의 우정이, 사랑이. 현실적인 결말과 아름다운 추억도 맘에 들었는데. 그 공허함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결말은, 참, 아름다웠는데 말입니다.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추억으로서 빛나는 것일까요? 지나야만 그 반짝거림을 알 수 있는, 스무살 같은 것일까요? 사랑은 아니, 아니에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는, 익히지 않아도 잘 살수도 있는 함수와 인수분해, 지수와 로그는 배우면서, 익히지 않으면 잘 모르는, 사랑하는 법, 이해하는 법 같은 건 배우지 않는 걸까요? 누구나 사랑을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데도 사랑에 대해 알고 깨닫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는 그렇게 소홀히 하는 것일까요? 왜 사람들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순위에 맞춰 정하는 걸까요? 그렇게 외로워하면서... 그렇게 고독해하면서 말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결국 그 모든 이유가 저에게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고, 저부터가 제 마음 앞에 걸쳐진 화려한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마치 늘 마시던 커피의 종류를 바꾸듯, 잘 먹던 아이스크림의 종류를 바꾸듯, 그렇게 쉽게 될 일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이상, 사랑을 하는 데에 있어, 생활이 아닌 ‘삶’을 사는데 있어 무엇이 더 중요한지 들은 이상... 저는 적어도 그 이전과 같은 사람은 이제... 아니겠지요. 그래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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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해방전선은 늘 보고싶은 영화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은하해방전선은 언제나 내가 상상하고 있던 이야기였다. 아, 과연 어떤 이야기일까.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은하야, 이런 멜로는 진짜 맨정신으로 못하겠어”라는 카피에 반해버렸고, 어쩐지 주인공 영재와 닮았을 것만 같은 감독에게 무작정 팬이라고 외쳐대고 싶었다. 어쩐지 독특할 것만 같은 우주너머의 감성, 따뜻하게 웃음이 실실 새어나올 것만 같은 하늘색의 포스터까지. 맘에 들었다고 하면, 과장처럼 느껴지려나? 아무래도 좋았다.



요 며칠 전 <황금시대>를 본 것도 윤성호 감독의 단편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발랄하고 통통튀는 이야기. 꺅, 은하해방전선 보고싶다!를 외쳤는데, 우리 바배우님의 은덕으로 드디어 영화와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오잉? 어쩐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영화를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던 나로서는, 곳곳에서 낯설음을 떨치지 못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야기는 분명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으니까. 영화를 만드는 영재는 내가 생각했던, 단편영화감독이 아니라, 장편영화를 기획하고 있는- 그러니까 회사와 팀을 꾸리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 현장에 대한 깊숙한 에피소드 혹은 영화 현장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 들을 법한 대사들이 눈에 띄었다. 찍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장대소를 터뜨릴만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과연 영화제작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친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난 재미있으니까.




우스운 건, 치사하고 야박한 영화 현장을 비웃으며 배꼽을 쥐고 있으면서도 한편, 아, 저래서 상업 영화판에 뛰어들면 안 돼. 아 정말 영화찍기란 피곤한 일이군, 논평하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영화촬영이라는 환상을 무참히 깨고 현실을 보여준달까.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소통도 지극히 어려운데, 영상으로 수많은 관객과 소통하려는 꿈은 얼마나 크고도 허황된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찍는 다는 것은, 누군가와 소통을 시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런 질문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잘나가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영재 군이 여자 친구와는 물론, 함께 하는 스탭들과도, 영화를 본 관객들과도 소통이 어려워 고민하는 이야기다. 다만 윤성호 감독은 이러한 이야기를 소리로 다루어낼 줄 안다. 이 영화에서 ‘소리’는 무척 중요한 구실을 한다. 첫째로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영재의 쉴 새 없는 잔소리.(그러니까 여기서 잔소리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서 그것을 둘러대느라 길어져 쓸데없어진 소리), 은하의 짧지만 강한 한 마디. 혁재의 복화술, 나레이션, 수화, 침묵 등 다양한 소리가 리듬을 이루며 영화의 재미를 높인다. (무엇보다 이러한 리듬이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주연배우인 임지규, 서영주의 노련한 연기덕분이다. 긴 대사를 제 호흡으로 소화해낸 임지규와 평범한 매력을 지닌 은하의 아련함을 잘 표현해낸 서영주의 연기는 정말 멋졌다.)







특히 여기서 말과 침묵은 인물의 감정 상태를 드러나는데 중요하게 쓰인다. 때때로 영재는 끓어오르는 말을 쏟아낼 때보다, 침묵하고 있을 때 상대에게 더 큰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한다.


소리는 때때로 말을 대체함으로써, 말 이외의 것으로 우리가 상대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되묻기도 한다.
우리 역시 삶 속에서 쉴새없이 떠들어 대지만, 관계를 더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말은 얼마나 하고 있을까. ‘그러니까 ‘그게’ 중요해, ‘그게’ 포인트지’하는 식으로 (대체 ‘그게’ 뭐에요?!)모호한 것 뒤에 숨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말들. 자신을 변명하는 말들, 내 얘기를 남 얘기인 양 빗대어 뒤로 숨게 하는 말들. 얼마나 무용한 말들을 우리는 토해내는가. 차라리 그보다는 내 목에서 악기 소리가 나는 것이 낫고, 혹시 글로 적어 한번쯤 정화해서 뱉어내는 편이 모두를 위해 더 낫지 않을까. “영재(너)는 너무 말이 많아”


또 하나의 소리가 되는 영화의 배경음악.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흔적없이 사그러드는, 자유자재의 음악 편집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주제곡 선정도 잘 어울렸다. 이야기가 어느새 음악이 되고, 음악이 다시금 대사로 이어지는. (‘신자유청년’에서 장기하 OST도 절묘했는데, 언제나 음악을 음악 이상으로 다룰 줄 아는 감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기꺼이 멜로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 연애는 소통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으니까.) 영재와 은하의 멜로드라마. 결국 영재는 수다스러운 입으로,(이때만큼은 ‘주둥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상최고의 찌질남에 등극한다. 얼마나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미운 소리를 하는지. 그 진심이 없는, 수다는 결국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지만, 그들의 처음, 그리고 다시금 사랑을 재확인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두근거린다. (로맨스를 로맨틱하게 만들기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도너츠 가게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 영재의 GV 시간에 나눈 둘만의 대화. 그리고 안타까운 메신저 대화 (대화명도 남다르다! ‘2000년에 스물 다섯 살이었던 영재’와 ‘하루 10분씩 코펜하겐식 이별실력’이라니)

 


우리 대화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틀려. 우리는 대화를 한 적이 없어


그럼 뭐든 말해봐. 내가 이제 진짜 열심히 들을게


이제 별로 할말이 없어


그럼 내 차례. 우리 다시 만나자.


이제 별로 자신이 없어


그럼 내가 잘할게


이제 별로 마음이 없어


내가 마음을 먹을 게 마음을 곱게 먹고 좋은 꿈을 꿀게
전처럼 같이 오도카니 좁은 방에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꿈


그 맘도 시간이 판단해 주겠지


사랑해 은하야


휴가 끝 엄살 끝

 


멜로 영화인데도 불구, 처음부터 모든 배경, 대사, 소품 등이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건 피할 수 없다. 벽에 보이는 ‘힘내라, 대한민국’ 포스터라든지, 군인이라든지, 민중가요라든지, 우빨 아저씨라든지. 이런 것들이 결국 대한민국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상징하긴 하지만, 온통 상징적인 프레임 안에 갇혀있으니 조금은 갑갑한 느낌이 들긴 했다. (아마 나 역시 만들 때마다 혼자만 알아볼 수 있는 상징물을 배치해대긴 하지만, 앞으로 이런 것도 염두에 둬야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가 “혹시 가족 중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신 분은 없구요?/ 사촌 중에 조선일보 기자가 있어요. /심각하구만” 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킬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하에게 써먹은 작업멘트를 남발하는 영재의 명대사. 영재의 작업의 멘트로, 이야기를 맺자.



연애랑 영화는 비슷해 좋을수록 말이 필요없지 채플린처럼


나는 둘다 서투니까 말이 많은 거야


대신 너한테 잘할게


내 주머니에 3천원 있으면 그 3천원 다주고


4천원 있으면 4천원 다 주고


그럼 삼십만원 있으면? 주머니에 삼백만원, 삼억원 있으면?


그래도 3천원 씩은 꼭 줄게


 

 

여기까지 이렇게 길게 떠들었는데도 불구, 그래서 결국, 이 영화가 대체 어떤 영환데? 라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별거 없어요. 그냥 소통, 인간 그런 것만 느끼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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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 6점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궁리




H.H에게

 

이 이야기는, 미국에 있는 작가인 당신이 영국 고서점 마크스 직원 프랭크와 주고받은 편지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소개글을 책표지에서 읽었어요. 편지 만으로 된 책이라, 어렴풋이 친구한테 소개받은 책이 이것이었나? 싶기도 하고, <유브갓메일>의 원작이 이것인가? 싶은 호기심에 책을 펼치게 되었답니다. 사실, 서점 직원하고 편지할 말이 얼마나 있겠어요? 대충 훑어보고 말 생각이었지만, 당신의 이력을 소개한 글이 결정적으로 제가 이 책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당신은 방송 대본과 희곡을 쓰는 작가다. 하지만 번번한 작품을 써내지 못해 딱히 기억될 만한 작품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서점직원 프랭크와 주고받은 편지를 공개해 출판했고, 이것이 흥행이 되어, 이제껏 그녀가 쓴 어떤 작품보다 유명세를 탔다. 영화, 연극 등으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실례지만, 제 얘기도 아닌데 마음이 씁쓸하고 슬퍼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녀가 쓴 어떤 작품보다, 프랭크와 보낸 편지가 유명세를 탔다-는 대목에서요.

 

서점과 편지라. 참으로 로맨틱한 로망이지요. 과연 서로 본 적도 없는 두 사람이 어떻게 인연을 이어나가는지 궁금했어요. 그것도 책 주문서를 통해서 말이죠. 맙소사. 제 생각에는 아마 H.H 당신의 책을 향한 끈질긴 구애와 서점 직원들을 향한 넉넉한 나눔, 아낌없는 선물이 큰 결실을 맺은 것 같아요. 물론 새로운 인연을 향해 거침없이 마음을 열어놓은 당신의 성품도 큰 역할을 했구요.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호의가 서로에게 감동과 사랑이 될 수 있다니. 읽는 저도 놀랐답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베푸는 애정 뿐 아니라, 서점 사람들이 당신을 향해 보내는 진심어린 사랑도 무척 애뜻한 것이었어요.

 

결국 당신은 마크스 서점에 친구가 잔뜩 생겼지요. 그곳에서 HH 당신 이름만 되면, 당신을 반겨주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 정도로요. 하지만, 당신이 결국 프랑크를 만나지 못한 것은 정말 유감이에요. 그래서 더 애뜻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H.H. 내 생각에는 말이에요. 프랭크가 비록 노라라는 아내가 있기는 했지만, 당신 편지를 쓰면서 사랑에 빠진 거 맞죠? (그것도 책 주문을 하면서!) 박식한 지식으로 조언을, 책에 대한 애정으로 꼼꼼한 답장을 건네는 프랭크는, 정말 호감 넘치는 분이었죠! 전, 글만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거든요. 당신, 글 쓸 때 분명 엄청 설레고 두근거렸을거에요. 프랭크가 유부남인게 끝끝내 유감이었어요. 물론 아내 노라도 멋진 여성일 것 같았지만요.

 

이제는 더 이상 없을 이야기네요. 더 이상 보기조차 힘든 책 주문장을 상상하니 그 당시의 정겨운 풍경들이 부러워요. 지금은 인터넷 서점에서 클릭 한번이면 책들이 오니까요. 글만으로도 친구를 사귀고, 사랑에 빠지는 아직까지 유효한 당신들의 낭만이, 부러웠습니다.

 

당신의 수많은 자상한 선물에 과연 보답할 길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영국 여행을 결심하신다면, 머물고 싶은 한 언제까지 쓰실 수 있는 침대가 오크필드 코트 37호에 있다는 것 뿐입니다 -프랭크 (76p)



(P.s. 프랭크의 저 답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까닭은, 나 역시 저런 편지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MI CASA ES SU CASA! 먼 곳에 있는 소중한 친구가 늘 이렇게 말해준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때 울컥한 마음이 기억나, 저 부분이 제일 좋았다! 먼 곳에 내 집이 있다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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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께 청원 드립니다.

2009. 04. 19. 10:06

이명박 대통령님,

어려운 시기에 국정을 수행하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전직 대통령으로서 이 어려운 시기에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있는
처지를 무척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저와 관련한 일로 대통령께 청원을 드립니다.

청원의 요지는 수사팀을 교체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동안의 수사 과정으로 보아 이 사건 수사팀이 사건을 공정하고
냉정하게 수사하고 판단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검찰이 하는 일은 범죄의 수사이므로, 검사가 머릿속에 범죄의 그림
그려놓고 그 범죄를 구성하는 사실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우선하는 검찰의 의무는 진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검찰은 있는 사실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지,
없는 사실을 만들거나 관계없는 사실을 가지고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서는 피의자에게 유리한 사실도 찾아낼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수사팀이 하고 있는 모양을 보면
수사는 완전히 균형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사팀은 너무 많은 사실과 범죄의 그림을 발표하거나 누설했습니다.

피의사실을 공표하거나 누설해 왔습니다.

다음에는 그들이 발표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발표하거나 누설해 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증거의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사리를 설명해 왔습니다.

마침내는 전혀 확인되지 않은 터무니없는 사실까지 발표합니다.

이런 일들은 검찰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불법행위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이 문제를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사건 수사팀이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미리 결론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발표하거나 누설한 내용을 보면 미리 그림을 다 그려놓고
그에 맞게 사실과 증거를 짜 맞추어 가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수사의 공정성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국민들은 그들이 만든 범죄의 그림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미래에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을 사람의 기억에까지
선입견을 심어줄 우려가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수사팀이 끝내 피의사실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에도 결론을 돌이킬 수가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려놓은 그림에 빠져서 헤어날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판단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많은 발표를 해버린 것 같습니다.

만일 사건이 이대로 굴러가면 검찰은 기소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검찰의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결론이 나왔을 때,
그리고 검찰의 수사과정의 무리와 불법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대한민국 검찰의 신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상황이 이러하니 수사팀은 새로운 증거가 나올 때까지
증거를 짜내려고 할 것입니다.
이미 제 주변 사람들은 줄줄이 불려가고 있습니다.

끝내 더 이상의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건이라도
만들어 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검찰권의 행사가 아닙니다.
권력의 남용입니다.

그동안 참여정부 사람들이나 그들과 혹시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심이 갈 만한 사람들은 조사할 만큼 다 조사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까?

이미 제 주변에는 사람이 오지 않은 지 오래됐습니다.
저도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조심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심을 하지 않아도 아무도 올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미 모든 것을 상실했습니다.
권위도 신뢰도 더 이상 지켜야 할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그리고 법리대로만 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검찰의 공명심과 승부욕입니다.

사실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이미 이 사건에 관하여 보고를 받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이처럼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까지는
보고를 받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께서 이 사건을 다시 한 번 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통상적인 보고 라인이 아니라 대통령께 사실과 법리를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다른 전문가들에게
이 사건에 대한 분석과 판단을 받아 보실 것을 권고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검찰이 막강한 권능으로 500만 불을 제가 받은 것이라고 만들어내는 데
성공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과연 퇴임 사흘 남은 사람에게 포괄적 뇌물이 성립할 것인지,
과연 박 회장의 베트남 사업, 경남은행 사업, 그 밖의 사업에
대통령이 어떤 일을 했는지, 무슨 일을 했다면 그것이 부정한 일인지,
이런 문제들에 관하여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박연차 회장이 2007년 6월 저와 통화를 했다면
검찰은 그 통화기록을 확보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도 확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보도를 보면 통신회사의 기록 보존 기한이 지났기 때문에
찾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통신 서브를 폐기하지 않은 이상 복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기관은 검찰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통화기록은 반드시 검찰이 찾아서 입증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이 기록을 성의 있게 찾고 있는지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검찰이 이 사건에 관한 단서를 언제 처음 알았는지,
왜 지금까지 수사를 미루어 왔는지,
그동안에 박 회장의 진술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
지금 검찰이 박 회장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능을
이 사건 수사를 위하여 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사정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 수사가 많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는 방법은 수사팀을 교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로지 대통령님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형식적 절차는 법무부 장관의 소관일 것입니다만,
대통령의 결단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저와 제 주변의 불찰로 국민을 실망시켜 드린 점에 대하여는
이상 더 뭐라고 변명을 드릴 염치도 없습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거듭 사죄드립니다.

이제 저는 한 사람의 보통 인간으로서 이 청원을 드립니다.

형식 절차에서 자기를 방어하는 것은 설사 그가 극악무도한 죄인이거나
역사의 죄인이거나 가리지 않고 인간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제가 수사에 대응하고, 이 청원을 하는 것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라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9년 4월
노무현


================================================================================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이야기가 조금씩이라도 끊임없이 흘러나와서
자꾸만 얘기되고 자꾸만 생각나서
당신을 잊지 못했으면 좋겠다.

전문을 찾아 읽는데 마음 한켠이 다시 쏴-해진다
2009년이 저물어가는 이때,
돌이켜보면, 올해 내게 가장 큰 흔적을 남겼던 이의 이름이 바로 노무현이었다.

과연 2009년의 노무현은,
나에게 노무현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의미인가..

문득 돌이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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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폴더를 정리하다가 <시선1318>을 발견했다.
딱히 영화를 볼 생각은 아니었지만, 최근 윤성호 감독님의 작품에 꽂혀있던 터라,
<시선 1318> 속에 포함된 윤성호 단편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를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보았다.




일단 "청소년의 이해와 실제"는, 윤성호식 화법이 도드라진 발랄 그 자체의 작품이다.
하나의 스토리가 있기 보다는, 한 장소에서 여러명의 고딩들의 목소리를 통해 "고딩들의 현재"를 고스란히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고딩을 겨냥했기 보다는 고딩, 그 이후의 삶을 주목한다. 그들은 과연 어떠한 삶을 꿈꾸고, 그들이 보는 내일은 어떤 것인가 묻는다. 때문에 88만원 세대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대사들은 보는 대딩의 마음을 후벼판다고나 할까.

너무 발랄하고 통통튀는 윤성호식 자막과 편집 스타일에다가 전체적인 빠른 리듬 때문에 온전히 이야기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흐름과 스타일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시종일관 흐르는 비트박스. <은하해방전선> 남감독을 떠올리게 할 정도의 녹슬지 않은 말빨! 별난 감수성,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윤성호 이름 세글자를 쿵, 박아놓는다.



엄마, 내 우주는 끙끙 앓아요. 매일 발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우주가 너에게 준 숙제는 어떻게 했니?
아니요, 내가 바로 우주 인걸요.

시장이 너에게 줄 선물은 알고는 있니?
아니요, 내가 바로 선물 인걸요.

미래가 준비된 인생을 살고싶잖니?
아니요. 지금이 바로 인생인걸요.

새로운 언어가 너희를 자유케 할거야.
아니요. 내가 바로 언어인걸요.









그 다음 영화를 이어서 본 까닭은 감독이 김태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때문에 굳이 영화평을 쓴다.
단편 "달리는 차은"은 정말 양 엄지 손가락을 번쩍 세울 만큼 멋진 작품이었다.
우연히 건진 수작!!! 주저없이 별 다섯개.
역시 김태용 감독! 이라고 울부짖을 만큼 ㅋㅋ 좋은 작품이었다.

누군가는 가족의 탄생 후속편이라고 할 정도로, 따뜻한, 하지만 저릿한 대안가족 이야기다.

달리는 육상부 소녀 차은이의 새엄마는 필리핀 여성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열리고 있는 해변도시. 육상부는 해체되고 차은이가 속한 육상부는 해체된다. 더이상 달릴 수 없는 차은. 차은의 꿈따윈 관심없는 완고한 아버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엄마. 게다가 학교에 차은의 엄마가 필리핀 여성이라는 것이 소문나서 차은에게 상처를 준다. 계속 달리는 차은이. 차은의 달리기 속에 아이의 고민, 슬픔, 상처, 기쁨, 사랑 등이 한꺼번에 묻어나온다.





대사도 좋고, 연기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녀를 포착해내는 감독의 따뜻한 연출이었다.
담아내는 시선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 때문에 자칫 뻔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감수성 덩어리로 만들어 질 수 있었던 비결이다.

실제 육상 선수라는 차은, 전수영양과 그녀의 가족 식구들은 모두 일반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놀랄만큼 좋은 연기를 펼친다. 차은과 남자친구. 그리고 가족. 진심같지 않게 멀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

놀랍게도, 영화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다.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차마 보여줄 수 없었던 소녀의 진심, 그 나이때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혼자 앓는 답답한 마음. 내 앞에 놓인 세상에 대한 불신과 막막함. 내가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두려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절망. 십대에 가질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불안'들이 그의 영화에 절절히 묻어나온다. 우리는 누구나 한때, (육상부가 아니더라도) 차은처럼 달렸을 것이다. 무작정. 언젠가 그렇게 숨이 가빠 켁켁대다가도 훌쩍훌쩍 울기도 했을거다. 마치 오래 전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아련함. 그리움. 반가움.





" 너 나 좋아하지? .. 좋아하면 그러는 거 아냐."


김태용 감독은 이 대사를 써놓고 40대 감성이라는 야유를 받았다고 하지만,
이 늦은 밤, 나의 마음을 절절히 울리는 이 대사는 기필코 최고다 T-T
이 대사를 칠 때의 차은의 표정과, 그 달빛과, 골목과, 영찬의 표정이라니...


 

정말 강추다. (바이런 양은 반드시 관람할 것을 추천하는 바다! 접속해ㅋㅋ)
이런 영화라니... 김태용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다!! 차은의 그렁한 눈망울,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언제나 '인권'영화는 (인권영화이기때문에 더욱) 계몽성을 띄는 순간, 진부함이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것 같다. 인권영화는 충분히 감성넘칠 수 있고('달리는 차은'), 재기발랄할 수 있다('청소년 드라마...')는 것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여준 것이 <1318>프로젝트의 의의라면, 나머지 작품들은 (인권)영화와 계몽성의 관계를 다시금 되새기게끔 했다. 뮤지컬 형식으로 일등과 꼴지의 문제를 다룬 방은진 감독의 '진주는 공부중'도 형식이 재미있었지만 뭐랄까. 문제의식이 새롭지 않았고, 화해가 너무 쉬웠다. 나머지 작품이 아쉬웠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인상깊었던 작품이 이현승 감독의 '릴레이'다. 아이가 있는 고등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하는 진지한 고민을 코미디로 풀어낸 '릴레이'도 좋은 작품이었다. 갈등의 구조 및 결말이 단순하긴 했지만, 그 문제 의식만큼은 한번쯤 고민할 만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얼마나 사회적 지원이 시급한지 큰 목소리를 낸다. 왜 미혼모는 있는데 미혼부는 없죠? 당찬 박보영의 연기도 좋다. (하지만 역시, 미혼모 여고생은 영화 속에서도 쓸쓸히 혼자 돌아갈 뿐이다.)

예전 인권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 '계몽성에서 오는 진부함'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였다. 계몽적인 메시지만 던져도 (놀랍게도) 활어같은 이야기가 금세 꼬리를 늘어뜨리고 회가 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 역시 이 벽을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 절반은 거뜬히 넘었다!ㄷㄷ) '현재의 고등학생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주력했다는 점은 놀랄 만한 성과임이 분명하다.

인권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시선 1318>을 보니, '지금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게 유효하다는 것을 알았다. 단, 여기저기서 너무 이야기 된 사연들 말고, 미처 살펴보지 못한 마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 미처 헤아려주지 못했던 마음들을 꺼내놓아야 인권 영화로 진정성을 갖는다. 그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담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가 가진 이야기를 다루는 태도다. 그 이야기에 대해 영화는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 섣부른 위로나 조언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귀기울이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만 정확히 보여줘도 충분히 관객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어쩌면 '관심'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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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해방전선>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자꾸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배우.
<백야행> 때문에 또 검색해본 배우.


후덜덜. 그런데 이거 뭔가요.
임지규님.




나에겐 이런 새초롬한 모습만으로도 매력적이었는데.
여기저기서 폭풍간지 매력발산 충분히 하고 계셨네요. 이제야 본다능 ㄷㄷㄷ
이거원 아이돌 저리가라 할 외모에 포스까지. 간만에 저는 훈훈해지는군요.


아니, 단지 안경하나 벗었을 뿐인데, ㅎㄷㄷ






소녀 팬심으로,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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